[감성노트] 새해의 결심

입력 2017-01-06 17:28
충고 대신 응원합시다

며칠 전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가 새해 계획표를 만들어서 보여줬다. 나름대로 잘 짰다고 여겼는지, 칭찬을 원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나는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예쁘게 잘 만들었는데…. 조금 고쳐 보면 어떨까?”라고 했더니, 딸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딸의 감정을 읽고 적당히 멈췄어야 했는데, 평소에 하듯이 가르치는 버릇까지 튀어나오고 말았다. “계획은 말이야… 단순하고(Simple), 진도를 측정할 수 있고(Measureable), 성취 가능하고(Achievable), 현실적으로(Realistic), 적절한 기간(Timely)을 고려해서 세워야 돼. 계획은 스마트(SMART)해야 돼.” 정신과 의사답게 그럴듯한 이야기를 들려줬으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거라 여겼다.

하지만 웬걸, 딸아이는 “나도 알아 스마트!” 하며 목청을 높였다. 나는 바로 꼬리를 내리고 후회했다. “함부로 가르치려 들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번번이 잊어버린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한마디 한다. “당신이나 잘해. 자기 다짐도 제대로 못 지키면서 스마트는 무슨 스마트!”

해외 학술지에 발표된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니 새해 목표 중에 실제로 달성되는 것은 8%라고 한다. 계획한 대로 되는 것은 열에 하나라는 거다. 사람들이 제대로 계획 세우는 방법을 몰라서 그럴까. 아닐 거다. 자기계발서도 넘쳐나고 인터넷만 뒤져 봐도 좋은 계획 짜는 법을 쉽게 알 수 있다. “벼락부자가 되겠다”처럼 허황된 바람을 목표 삼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대체로 사람들은 “올해는 술 줄이고, 담배 끊고, 운동하고, 책을 더 많이 읽고 싶어요”라며 소박한 걸 바란다.

끝까지 계획을 밀고 나가지 못하는 진짜 이유 중 하나는 꼰대가 되어 버린 어른들의 “이래라, 저래라” 하는 일방적 가르침에 휘둘려서 자기 뜻을 제대로 펼치기 어려워서가 아닐까. 시작도 하기 전에 더 잘해야 한다고 다그쳐서 그런 건 아닐까.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에게 진짜 필요한 건 “너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어”라는 진심어린 응원일거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더 많이 필요한 건 비록 목표에 닿지 못해도 “괜찮아, 다시 한 번 더 도전해 봐”라는 다독임일 것이다.

김병수(서울아산병원 정신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