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정농단 개입 의혹’ 국정원에 김기춘 그림자

입력 2017-01-06 05:04
‘법비’(法匪·법을 이용한 도적)로 비난받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국가정보원의 국정농단 사태 배후에 어른거리고 있다.

국정원 추모 전 국장은 국정원의 최순실 게이트 개입 의혹 핵심 당사자다. 최순실씨와 관련된 국정원 내부 정보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에게 건네 국정농단에 관여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김 전 실장은 국정원장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 전 국장의 승진 인사를 강행토록 지시했다. 단순한 인사 절차로 보기에는 석연찮은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이병기 전 국정원장은 2014년 7월 부임했다. 이후 첫 인사에서 추 전 국장의 독단·비위 의혹을 접하고 2급 유임을 결정했지만 김 전 실장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추 전 국장은 승진해 국내정보총괄 제○국 국장으로 임명된다. 국정원의 최순실 게이트 개입 의혹이 본격적으로 촉발되는 시점이다.

그동안 추 전 국장은 주로 우 전 수석과 함께 국정농단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 비망록에는 추 전 국장이 ‘우병우팀’에 소속돼 사찰작업 등을 벌인 정황이 드러나 있다. 그런데 여기에 김 전 실장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국정원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 전 실장이 추 전 국장을 특별히 지목해 승진 지시를 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게 국정원 내부 평가다. 최순실 게이트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추 전 국장을 김 전 실장이 비호했다는 관측이 가능하다.

추 전 국장은 박근혜정부 인수위원회와 청와대 민정수석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13년 5월 이른바 ‘박원순 제압문건’ 작성자로 지목돼 국정원에 복귀했다. 불과 3개월 뒤에는 김 전 실장이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된다. 박근혜정부의 핵심 실세였던 김 전 실장이 그를 몰랐을 리 없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추 전 국장은 최씨의 국정농단은 물론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등 정부의 무리한 정책에도 개입했다는 의혹도 있다. 이를 두고 국정원 내부 정보를 장악한 추 전 국장과 진보세력 제압용 정책을 구상한 김 전 실장이 일종의 동맹을 맺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추 전 국장은 김 전 실장 등의 힘을 빌려 국정원을 장악했다는 정황이 짙다. 2014년 추 전 국장 승진 직후 벌어진 ‘고-추 전쟁’이 대표적이다. 복수의 사정 당국 관계자의 발언을 종합하면 이명박정부 초기 국정원은 이른바 원내 ‘DJ·노무현 라인’ 제거 작업을 벌였다. 이때 국내정보담당 총괄이었던 고모 전 국장이 강원도 속초로 좌천됐다. 고 전 국장은 그러나 박근혜정부 들어 복귀했고, 이번엔 이명박정부 라인에 보복을 시작했다고 한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줄을 댔던 인사들이 줄줄이 좌천되거나 옷을 벗었다.

이때 추 전 국장이 화려하게 복귀한 뒤 내부 암투를 ‘제압’했다. 고 전 국장도 원내 핵심보직인 총무국장에 내정됐지만 1주일 만에 물러난 뒤 옷을 벗었다. 국정원의 공식 업무 창구인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배경 없이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추 전 국장은 이후 국정원 내 TK(대구·경북) 출신 측근들을 ‘수족’으로 부리며 국정원을 빠르게 장악해 나갔다고 한다. 국정원 관계자는 “추 전 국장은 국정원이 나갈 방향에 대한 나름의 소신이 강했다”면서 “자신의 소신처럼 국정원을 운영하기 위해 인사권을 악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5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국회에서 개최한 ‘권력적폐 청산’을 위한 긴급좌담회에 참석한 민주당 신경민 의원도 국정원의 농단 실태를 성토했다. 신 의원은 “박근혜정부의 국정원은 대선 댓글 사건뿐 아니라 입법·행정·사법·언론을 무력화하는 총체적 음모공작을 벌였다”며 “추 전 국장은 남재준·이병기 전 국정원장과 이병호 국정원장을 모두 무력화시켰다”고 비판했다.

강준구 백상진 문동성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