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삶을 살던 어느 선배가 ‘날아가는 시계(Time Flying)’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던 한 소녀가 시간이 너무 더디 흐르는 것이 답답해 2층에서 창밖으로 시계를 날려버렸다고 한다. 빨리 성장하고 싶어 몸 달아 하던 모습은 대부분 어릴 적 자화상이다. 점점 잦아드는 생명의 길이가 마치 ‘날아가는 시계’와 같다고 안쓰러워하던 그의 눈빛이 옛 기억으로만 남았다.
똑같이 하루 24시간, 1년 365.24219일을 보내면서도 청년시절에는 하루가 짧고 한 해는 긴 반면, 노년은 하루는 길고 한 해가 짧다. 영국 BBC가 만든 시간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사람에게 있는 생체시계는 나이가 들수록 늦게 가기 때문에, 외려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레빈은 세계 31개 나라를 표본으로 여러 문화권의 시간관념 차이를 연구한 후 ‘시간지도’를 작성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인은 일상생활의 평균속도가 18위, 보행속도는 20위다. 한국인 시계의 정확성은 16위로 중간이었다. 평소 급하게만 살아온 우리의 사고방식과 동떨어진 통계처럼 느껴져 쉽게 인정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속도감은 해외에서도 ‘빨리빨리’로 통하지 않던가. 물론 현실감으로서 속도든, 심리적 마인드의 속도든, 시간은 누구에게든 공정한 기회일 것이다.
현재 세계에는 40여개의 달력체계가 공존한다. 세계 공통 달력인 그레고리력을 비롯해 비잔틴, 중국, 인도, 이슬람, 유대교, 단군기원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역사를 측정하는 잣대를 골고루 사용하는 셈이다. 이집트에서 시작한 태양력은 나일강이 범람할 때마다 동쪽 하늘의 일정한 위치에 시리우스(큰개자리별)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가능하였다. 이집트 원정을 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태양력을 로마의 달력으로 차용하였는데, 현재 달력체계의 뼈대를 이룬 율리우스력이다. 이 달력은 주후 321년부터 주(週) 단위 개념을 사용하였다.
율리우스력의 특징은 4년마다 1일을 더하는 윤년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시간이 흐르면서 시간의 파편들이 누적되어 역법상 심각한 오차가 발생했다. 3월 21일이어야 할 춘분이 달력상으로는 3월 11일로 옮겨진 것이다. 춘분은 그리스도교에서 부활절을 정할 때 기준이 되는 날이므로, 열흘간의 오차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주후 325년, 니케아 공의회는 ‘춘분 지나 보름달 직후의 일요일’을 부활주일로 제정한 바 있다. 결국 1582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이 해의 3월 10일 다음날을 3월 21일로 한다는 새 역법을 공포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현재의 달력이다. 그럼에도 율리우스력을 쓰고 있는 러시아 등 동방정교회권은 서구세계보다 13일 늦게 성탄절을 맞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의 경우 주현일(1월 6일) 바로 다음날인 1월 7일에 성탄절을 축하한다.
뒤죽박죽 달력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2017년 정유년 새해를 맞았다. 모든 사람은 감쪽같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 금쪽같은 시간의 주인이 된 셈이다.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다시 소망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은 은총이다. 불투명한 시계와 불가시한 시대를 살더라도 우리가 새 출발할 수 있는 것 역시 은혜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
지난 연말연시에는 짙은 어둠을 밝히는 촛불행렬이 있어서 절망을 앓는 중에도 희망의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날마다 거짓과 비리, 부패와 오명의 동어사용을 반복하며 오히려 증폭해가는 청와대발 막장드라마의 종점은 어디일까. 언제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는” 상식적인 귀결로 마무리될까. 어둠이 사라지고 거짓이 걷히는 그때는 새 달력의 숫자가 아니라, 새 시대의 여명으로만 가능할 것이다.
송병구 색동교회 담임목사
[바이블시론-송병구] 깊은 어둠에서 다시 소망을 품자
입력 2017-01-05 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