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995일째인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극장 ‘향’. 안산 단원고 세월호 희생 학생의 엄마들로 구성된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이 연극 ‘그와 그녀의 옷장’을 무대에 올렸다. 재정문제로 중단됐다가 주민들이 성미산문화협동조합을 만들면서 3년 만에 부활한 성미산 동네연극축제의 개막작이다.
‘그와 그녀의 옷장’은 비정규직 노동자 가족의 삶을 따뜻하고 유쾌하게 그린 코미디. 경기도 안산에 기반을 둔 극단 걸판의 극작가 오세혁씨가 발표해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이날 공연은 극단 노란리본이 지난해 7월 쇼케이스를 거쳐 10월 안산에서 처음 선보인 뒤 8번째 무대에 올리는 것이었다.
90분 동안 세월호 엄마 7명은 남자 역할을 비롯해 1인 다역까지 해내며 모든 배역을 소화했다. 프로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연기력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몇몇 엄마들은 대사를 꽤 그럴 듯하게 소화했다. 심지어 소품인 옷장 문이 자꾸 닫히는 상황에서 애드리브를 능청스럽게 해내기도 했다.
객석 70여석을 가득 채운 관객 중에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 온 경우가 유난히 많았다. 관객들은 세월호 엄마들의 익살스런 대사에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극중 비정규직 노조의 승리를 위한 촛불문화제에서 세월호 진상규명 및 온전한 선체인양을 외치는 사회자의 멘트에는 가슴이 묵직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공연이 끝난 뒤 세월호 엄마들의 무대 인사가 이어졌다. 고(故) 김동혁군의 엄마 김성실씨는 “시간이 흘러도 아이를 생각하면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작품을 연습하는 동안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그래도 엄마들끼리 많이 의지가 됐다”고 말했다. 고 정예진양 엄마 박유신씨는 “이 연극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세월호 진상규명은 요원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도 꺼리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빠르게 변해서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에 관심을 가지고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어서 기쁘다”고 밝혔다. 엄마들이 울음을 참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관객은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아 내렸다.
이 연극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2015년 10월 세월호 엄마들은 4·16안산시민연대가 제공하는 마음 치유의 일환으로 연극 수업을 제안받았다. 극단 걸판 출신 배우 겸 연출가 김태현씨가 합류했지만 엄마들이 마음을 열기까지 몇 달이 걸렸다.
김씨는 “처음엔 엄마들이 연기는커녕 희곡을 읽을 의욕조차 없었으며 아이를 잃고 웃는 것을 죄스러워했다. 그래도 엄마들이 조금이나마 웃을 수 있도록 일부러 희극을 꾸준히 읽혔다”면서 “6개월이 지난 뒤 안산온마음센터(세월호 피해자 트라우마 치유센터)와 함께 새로운 멤버들을 받아들이면서 극단의 형태를 갖췄다. 7월과 9월 두 차례의 쇼케이스를 통해 공연 전체를 올려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10월 첫 공연 이후 횟수를 거듭할수록 엄마들의 표정이 밝아지는 게 보여 기쁘다”고 덧붙였다.
이 작품은 요즘 촛불집회 시국 및 특검수사에 맞물려 여러 곳에서 앞다퉈 초청받고 있다. 극단 노란리본은 세월호 문제 책임자 모의재판을 소재로 엄마들이 공동창작한 신작도 조만간 선보일 계획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
가는 세월이 야속한 ‘세월호 엄마들’… “치유로 시작한 연극… 배우 됐네요”
입력 2017-01-06 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