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달 자신의 싱크탱크인 ‘국민성장(가칭)’에 “개헌 공약을 만들어 달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공언했던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지방분권형 개헌을 바탕으로 선제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특히 대통령 권력 분산을 위한 의원내각제·이원집정부제 개헌 요구에 맞서 지방으로의 대거 권력 이양을 선언해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개헌 시점으로는 내년 지방선거를 제안했다. 국회 개헌특별위원회에서 논의를 진행하는 동시에 대선 후보들이 대선 공약으로 개헌 입장을 밝히고, 이후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로 확정하는 시나리오다.
문 전 대표는 4일 경남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다음 정부 초반에 개헌하는 것이 순리”라며 “2018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초 싱크탱크에 개헌 공약 마련도 주문했다. 민주당 김경수 의원은 “문 전 대표가 국민성장에서 도와주는 교수들과 개헌 관련한 원론적 논의를 했다”며 “개헌 공약이 분명히 필요하므로 이를 준비해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문 전 대표는 회의에서 구체적인 시기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집권 시 차기 정부 초반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문 전 대표의 개헌 구상은 권력구조 개편이 아닌 지방분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 구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행정수도 이전은 2004년 헌법재판소가 ‘관습 헌법’에 위배된다며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개헌 사안이라는 해석이 제기됐다.
문 전 대표 측은 “2004년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중단됐던 행정수도 건설을 개헌에 반영해야 한다는 내부 의견이 많다”면서 “행정수도 이전은 노 전 대통령의 뜻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노무현정부의 적자인 문 전 대표 역시 지난 4·13총선 등 과거 수차례 “세종시가 실질적 행정수도 역할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공식적으로 개헌안에 포함시킬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문 전 대표의 비서실장격인 임종석 전 의원은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개헌안에 포함시킬지를 공식 논의한 적 없다”고 말했다. 앞서 국민의당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개헌을 논의할 때 반드시 행정수도 이전 부분이 명시돼야 한다”고 밝혔다. 행정수도 이전을 촉구했던 안희정 충남지사 측도 “개헌 사항에 포함되는지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이와 함께 세제(稅制) 조정은 물론 입법·행정·재정권을 지방에 대폭 이양하는 방안도 개헌안에 포함시킬 것으로 전해졌다. 문 전 대표 측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권한의 균형을 촉구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개헌안에 지방분권 및 직접민주주의 강화 항목도 명확히 적시키로 했다.
문 전 대표가 개헌 공약 마련을 요구한 지난달 초는 개헌을 매개로 한 야권 비주류의 연대 움직임과 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등 개헌 세력의 목소리가 분출되던 시점이다. 하지만 문 전 대표 측은 이원집정부제 형식의 권력 분산형 개헌 논의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김경수 의원은 “지금 정치권에서 언급되는 분권형 개헌은 이원집정부제를 얘기하는 것인데, 이는 문 전 대표가 주장하는 지방분권형 개헌과 다른 것”이라며 “권력구조와 관련해서는 4년 중임제 외에 더 논의된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문 전 대표가 개헌 공약을 제시하면 이재명 성남시장과 안희정 충남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민주당 의원 등 다른 대권주자도 속속 개헌 공약 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 측은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를 중심으로 공약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 지사 측은 개헌 논의 기구와 개헌 시기를 못 박은 특별법 제정을 제안할 계획이다. 현재 국회 개헌특별위원회 활동을 법제화하자는 취지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문재인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 가능”
입력 2017-01-05 0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