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청춘들은 ‘촛불’의 저작권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여길 수도 있을 듯하다. 2014년부터 이듬해까지, 일본의 젊은이들은 ‘거리의 정치’를 실현했다.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안보법안 통과에 반대했고, 알권리 침해 논란을 빚은 특정비밀보호법 제정을 막으려고 분투했다.
우리네 촛불처럼 이들의 시위 모습은 자유분방했다. 딱딱한 정치구호 대신 박진감 넘치는 음악과 통통 튀는 발언이 축제 같은 시위를 만들었다. 젊은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안부와 격려를 주고받으며 시민들의 시위 참여를 유도했다. 급기야 2015년 8월 30일, 일본 국회 앞에는 무려 12만명 넘는 시민들이 운집해 안보법안 통과를 강행하려는 정권에 맞섰다. ‘일본에는 저항문화가 없다’ ‘일본 청년들은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세간의 평가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시위 문화를 주도한 곳은 10대와 20대들이 주축이 된 단체 ‘실즈(SEALDs·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학생긴급행동)’였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다!’는 실즈 활동에 참여한 젊은이들의 연설과 회고담 등을 촘촘히 엮어낸 책이다. 일본 젊은이들의 말과 글을 옮겼지만 그 내용은 박근혜 대통령 국정농단 사태에 반발해 한국 젊은이들이 쏟아낸 발언과 포개지는 부분이 많다.
본문 첫 챕터를 장식하는 글은 2015년 6월 12일 ‘전쟁 법안에 반대하는 국회 앞 항의 집회’에서 하시모토 베니코씨가 한 연설이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오기에 앞서 올여름에 입을 수영복을 샀습니다. 그리고 속눈썹 연장은 언제쯤 할까 하고 고민도 했습니다. 저는 수영복이나 속눈썹 연장 따위를 고민하는 사람이 정치에 관해서도 입을 여는 게 정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내용의 글은 계속 이어진다. 고바야시 가나우씨는 2015년 6월 27일 ‘전쟁 법안에 반대하는 하치 동상 앞 가두선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내가 ‘나’일 수 있도록 나의 주장을 합시다. 정부가 우리 대신 말하게 하지 말고, 우리가 우리의 주장을 합시다.”
알려졌다시피 실즈는 지난해 8월 해산했다. 이들이 실현한 ‘거리의 정치’는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현실 정치를 바꾸는 데까진 나아가지 못했다. 지난해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압승했고,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는 보수 성향 후보가 당선증을 거머쥐었다. 그렇다면 실즈의 활동은 실패한 것일까. 이들은 “불안 속을 일일이 더듬어가며 전진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말미에 등장하는 실즈 명의의 글에는 촛불 대열에 동참한 우리나라 많은 시민들에게 격려가 될 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야 한다. 끝나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 (중략) 그리하여 30년 후, 일본은 100년 동안 전쟁을 하지 않은 나라가 될 것이다. 이상을 드높이자, 미래를 위해. 이상은 현실이 된다.’
‘시민에게 권력을’도 ‘촛불 이후’를 모색하게 만드는 지점이 적지 않은 신간이다. 정치학자이자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인 저자는 기성정치를 부정하는 해외의 시민정치세력을 조명한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저자가 스페인의 이색 정치실험을 소개한 내용들이다. 가령 스페인 지역정당 ‘아오라 마드리드’는 첫 번째 원칙으로 다음 같은 구호를 내걸고 있다. ‘좌우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다. (중략) 우리는 아래에서 왔다. 맨 위에 있는 사람에게 대항하는 맨 아래의 사람들이 뭉쳤다.’
138페이지밖에 안 되는 팸플릿 형태의 책이지만 그 속에 담긴 무게는 가볍지 않다. 궁극적인 주장은 헌법 개정이다. ‘기득권 세력에게 유리한 법과 제도를 바꾸고 민중권력이 실현될 수 있는 헌법 체계를 갖춰야 한다. 기득권 세력이 스스로 이런 틀을 만들 가능성은 없기에 우리가 스스로 나서야 하고 조금씩 성공을 거둬야 한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책과 길-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누가 일본 청년을 정치에 무관심하다 했는가
입력 2017-01-05 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