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세렝게티 법칙] 생태계 독점하는 인간이 최후의 패자

입력 2017-01-05 17:29

영국 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비유를 빌려서 설명해보자. 지구의 역사를 양팔을 벌려 왼손과 오른손 사이의 거리라고 가정했을 때, 최근 100년은 오른손 손톱 끝에 묻은 티끌과도 같은 시간일 거다. 그런데 이 짧은 시기에 인간은 지구의 질서를 크게 뒤흔들었다. 닥치는 대로 동물을 사냥했고 물고기를 잡았으며 산림을 개간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은 ‘생명 활동의 지배권’을 장악했다.

결과는 생태계의 교란이었다. 50년 전 지구에는 사자 45만 마리가 살았지만 지금은 3만 마리밖에 안 된다. 4억년 넘게 바다를 지배한 상어의 개체군은 최근 50년 사이에 90% 넘게 줄었다. 지구의 총생산능력에 견줘서 설명하면 사태는 더 자명해진다. 인구가 30억명 수준이던 50년 전 인류는 지구가 지닌 연간 생산능력의 70%를 사용했는데 현재는 150%를 쓰고 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지난해 써버린 지구 자원을 온전히 재생하려면 올해 지구 1.5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미국 생물학자인 저자가 걱정하는 건 수많은 환경단체의 우려와 같은 내용이다. 그런데 주장을 전개하는 방식이 색다르다. 주장의 근간을 이루는 건 ‘모든 것은 조절된다’는 이른바 ‘세렝게티 법칙’. 이 법칙은 광활한 생태계를 아우르는 거시적 세계와 분자 단위의 미시적 세계에 모두 통용된다.

세렝게티 법칙이 완성되는 데는 수많은 과학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이들은 이 세상을 이루는 생명의 원리를 파헤치는 데 인생을 바쳤다. 자크 모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사령관으로 복무하면서 효소 조절의 비밀을 풀었다. 월터 캐넌은 전쟁터에서 부상병을 치료하다가 쇼크 치료의 해법을 제시하면서 인체가 조절 과정을 통해 안정성을 유지한다는 법칙을 밝혀냈다.

저자는 이들 과학자의 선도적 노력을 전하면서 세렝게티 법칙의 타당성을 집중 조명한다. 낯선 의학용어가 간단없이 이어지고 다뤄지는 정보량은 방대하지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과학저널 네이처는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을 통해 생물학자들이 서로 전혀 다른 곳에서 독립적으로 다다르게 된 생명의 핵심을 다룬다. 새로운 통찰과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고 평가했다.

책장을 덮을 때 새삼 되새기게 되는 문장은 저자가 동물학자 로버트 페인의 말을 빌려 경고한 대목이다. “인간은 확실히 생태계를 독점하는 핵심종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생태계의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생태계에 해를 가한다면 결국에는 최후의 패자로 남을 것이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