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에 대한 금기 문제가 요즘 독일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금서(禁書)였던 나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의 저서가 재출간된 뒤 베스트셀러로 도약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 독일 내무부 장관이 테러에 맞서 ‘나치의 유산’으로 여겨진 중앙 정보기관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영국 BBC방송과 일간 텔레그래프 등은 3일(현지시간) 히틀러 저서 ‘나의 투쟁’에 비판적 해설을 덧붙인 책 ‘히틀러, 나의 투쟁: 비평판’(사진)이 독일에서 8만5000부 판매됐다고 보도했다. 이 책은 뮌헨 현대사연구소(IfZ)가 원본에 주석 3700개를 더해 지난해 1월 출간했다. 두 권짜리 양장본으로 분량이 2000쪽에 달한다. 가격은 58유로(약 7만3000원)다.
비평판은 방대한 분량과 만만찮은 가격의 학술서인 데도 지난해 독일 주간지 슈피겔의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내리다가 4월에는 1위에까지 올랐다. 책이 때아닌 인기를 끌면서 이달 말에는 6쇄를 찍게 됐다.
IfZ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나치 제국의 청사진이 담긴 이 책이 지금 다시 인기몰이를 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다시 득세하는 극우주의의 뿌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의 호기심이 판매고를 올렸다는 분석이 많다.
IfZ는 “이 책이 히틀러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거나 신나치주의자들에게 선전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근거가 없다”며 주된 구매층이 우파 급진주의자들이 아닌 역사학자나 교육자라는 분석도 내놨다.
‘나의 투쟁’은 히틀러 집권 8년 전인 1925년 출간돼 나치 치하에서만 1000만부 이상 팔렸다. 나치 몰락 이후에는 판권을 넘겨받은 바바리아 주정부가 출간을 금지하면서 금서가 됐다. 독일 정부는 2014년 히틀러 저서 전체에 대한 무비판적 출간을 전면 금지한 상태다. 이번 비평판은 원서의 저작권이 2015년 말 만료되면서 세상에 나왔다.
나치 금기에 대한 또 다른 파문은 이날 토마스 데메지에르 내무장관이 현지 일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에 국가안보 시스템을 개편해야 한다는 기고문을 실으면서 불거졌다. 데메지에르는 “세계적인 테러리즘과 국가 재앙에 맞서 싸울 연방관할권이 우리에겐 없다”며 독일판 연방수사국(FBI)을 만들어 연방의 통제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베를린 크리스마스 시장 테러 사건 이후 당국의 대처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정치권은 즉각 난색을 표했다.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만 찬성했고 데메지에르가 소속된 기독민주당(CDU)을 비롯한 대부분 정당이 반대 의사를 밝혔다. 독일은 나치 친위대의 그림자 때문에 이런 정보기관을 두는 것을 경계해 왔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獨, 히틀러 자서전 판매 열풍 ‘논란’
입력 2017-01-05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