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삼성물산 합병 의혹에 국가정보원이 관여한 정황을 포착했다. 특검팀은 국정원이 반정부 성향 문화계 단체 등의 동향을 청와대에 보고한 단서를 잡고 수사 중인 것으로 4일 알려졌다. 특검팀은 일부 공무원에 대한 정부 차원의 조직적인 성분 검사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특검팀은 5일 블랙리스트 업무를 조율한 의혹을 받는 송수근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을 참고인으로 소환해 조사한다. 송 차관의 진술 태도 등에 따라 피의자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달 30일 야권의 반발에도 송 차관의 임명을 강행했다. 특검팀은 블랙리스트 작성 경위를 밝히기 위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체부 장관도 조만간 소환할 계획이다.
특검팀은 최근 문체부와 청와대 관계자 조사를 통해 블랙리스트가 국정원의 진보단체 동향 보고 등을 기초로 작성된 정황을 포착했다.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국정원 보고를 종합해 리스트를 만들었고, 교육문화수석실이 문체부로 전달한 의혹을 받는다. 특검팀은 국정원-청와대-문체부로 이어지는 ‘삼각 커넥션’ 여부를 의심하고 있다.
조현재 전 문체부 제1차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재직 시절(2013년 3월∼2014년 7월) ‘진보 성향 문화단체 지원을 통제해야 한다’는 내용의 국정원 보고서를 봤다”고 폭로했다. 2014년 문체부 1급 고위공무원 6명이 일괄사표를 낸 배경에 정부 차원의 공무원 성분분석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특검팀은 이런 의혹 등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2일 이병기 전 국정원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특검팀은 이 전 원장에 대해 “청와대 비서실장 재직 시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압수수색한 것”이라면서도 “혐의가 인정되면 직권남용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은 “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바가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특검팀은 국정원 정보관이 삼성물산 합병 이전 국민연금의 내부 동향을 파악해 청와대에 보고한 정황도 포착했다. 이 정보관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국민연금 투자위원회 위원 성향 등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투자위 위원들의 의향 등을 미리 파악해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넣은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특검팀은 국민연금이 사실상 사전 시나리오에 따라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한 과정에 국정원이 개입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문화계 블랙리스트·삼성 합병에도… 국정원 또 개입 의혹
입력 2017-01-04 17:58 수정 2017-01-04 2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