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기독교인들은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될 때 그 구원은 영원하다고 생각한다. 한 번 구원을 받으면 어떤 경우에도 중도 탈락 없이 영원한 구원을 얻는다는 믿음이다. 신자들은 이 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닮는 성화(聖化)의 인생을 걸어간다. 그런데 요즘 이 전통적인 칭의론(구원론)이 흔들리고 있다. 이른바 ‘새관점 학파’가 촉발시킨 주장 때문이다.
새관점 학파의 대표 주자 영국 성공회 신학자 톰 라이트는 “첫 칭의는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지만 최후 심판 때의 마지막 칭의는 전 생애를 통해 성령의 인도 아래 얼마나 거룩한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한국의 대표적 신학자인 김세윤 미국 풀러신학교(신약학) 교수도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예수를 믿음으로써 칭의를 받았더라도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으면 최종 심판 때에 구원 받지 못하고 탈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유보적 칭의론’이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보수 신학계는 종교개혁의 뿌리를 흔든다며 비판하고 있다. 신학자들 간의 논쟁도 활발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칭의론에 대한 책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백석대 최갑종 총장의 ‘칭의란 무엇인가’(새물결플러스)는 전통적 칭의론이나 유보적 칭의론 중 하나를 편들지 않는다. 저자는 이것이 옳고 저것이 틀렸다고 답을 내지 않고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먼저 살피자고 권한다. 저자는 신약학을 전공한 성경신학자로서 성경에서 두 가지 칭의론 관련 구절은 모두 나타난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어떤 구절은 칭의가 인간의 행위에 좌우되지 않고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주어지며 최후까지 견고하다고 강조한다(갈 2:16, 롬 3:23∼24, 롬 8:32 이하). 반면 또 다른 구절은 행위대로 심판을 받아 어떤 이는 영벌에 처해지고, 어떤 이는 영생을 누릴 것이라고 돼있다(마 5:20, 7:21). 열 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 비유 등도 탈락을 언급한다.
그러면 칭의론은 모두 틀린 것인가. 저자의 해법은 이렇다. 두 가지 관점을 동시에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구원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오직 믿음과 은혜를 강조해야 하며, 비윤리적 행태와 부패에 대해서는 행위에 따른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강조해 경고하라고 말한다.
저자는 “행위에 따른 심판과 구원을 강조한다고 해서 함부로 전통적 구원관을 포기하고 행위구원론을 가르치는 것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며 “동시에 오직 믿음과 은혜의 구원을 설교한다고 해서 이를 값싼 구원론으로 매도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책은 칭의의 기원과 정의, 근거, 성화, 전가, 최후 행위 심판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세계적 복음주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 등이 정리한 ‘칭의의 여러 얼굴’(이레서원)은 전통적 칭의론에 대한 영국 성공회 신학자들의 견해를 정리한 책이다. 칭의 교리에 대한 개신교적 입장을 다양한 시각으로 요약한 내용인데 동방정교회나 로마가톨릭의 칭의론도 다뤄 입체적 비교가 가능토록 했다.
책의 원본은 1986년 출간됐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낯설지 않다. 마치 칭의론과 관련된 오늘의 논쟁을 예측이나 한 것처럼 이와 관련된 구절들이 등장한다. 유럽 교회나 영국 성공회 내부에서도 이미 칭의론에 대한 신(新) 해석이 출현했었다는 방증이다.
패커는 ‘개신교 신학에서의 칭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끊임없이 이신칭의에 대한 오해가 있고 반대하는 의견이 있으며 형태가 왜곡되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자신의 죄인 됨에 대해 무엇인가를 아는 자들에게는 이 교리가 진실로 생명줄이자 송영이며, 찬양의 외침이자 승리의 노래다.”(165쪽)
패커는 칭의론과 관련해 “개혁주의 교리의 기초는 타락한 인간의 전적 무능력에 대한 믿음, 그리고 부르심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적인 자비하심이며 이것은 다른 어떤 방식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전통적 칭의론’이냐 ‘유보적 칭의론’ 이냐… 칭의론, 질문을 받다
입력 2017-01-04 2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