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선서 대세론 후보들은… 이회창 ‘고배’ 이명박 ‘승리’

입력 2017-01-04 00:07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두 달 넘게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고수하고 있다. 2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의 격차도 커지면서 대세론이 형성됐다. 하지만 과거 대선을 되짚어보면 대통령 선거를 4∼5개월 앞두고 대세론을 형성했던 대권주자 중 청와대 입성에 성공한 경우는 많지 않다.

한나라당 총재였던 이회창 후보는 1997년과 2002년 두 차례 대선에서 모두 고배를 마셨다. 이 후보는 97년 대선에서 ‘대쪽’ 이미지를 앞세워 일찌감치 대세론을 형성했다. ‘DJP 연대’를 앞세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었다. 독자 출마한 이인제 후보도 변수였다.

이회창 후보는 2002년 대선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역전패를 당했다. 이 후보는 당시 사실상 대통령 자리를 예약했다는 평가 속에 막강한 영향력과 인지도를 과시했다. 대선을 5개월 앞둔 그해 7월 한국갤럽이 실시한 대선후보 지지도 여론조사 결과 37.4%를 얻어 압도적 1위를 달렸다. 5년 전 대선에서 아들 병역비리 논란 등 검증 국면을 거쳤기에 추가 악재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노사모’ 등 바닥 민심을 등에 업은 노 전 대통령의 돌풍에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대세론에 안주해 ‘안정’만 내세우다가 ‘개혁’과 ‘변화’라는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한 것이 패인이었다.

대세 후보들이 당내 경선을 뚫지 못해 본선무대를 밟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2002년 유력 후보였던 이인제 전 의원은 더 큰 바람을 일으킨 노 전 대통령에게 당내 경선에서 완패했다. 2007년에는 야권 선두주자였던 고건 전 국무총리가 중도 하차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세론을 관철시켜 승리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전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꺾은 뒤 계속 대세론을 유지했다. 그 기세를 몰아 여당 후보였던 정동영 의원에 낙승을 거뒀다.

5년 뒤인 2012년에는 박 대통령이 대세를 지켜냈다. 박 대통령은 콘크리트 지지층을 기반으로 문재인 후보의 추격을 뿌리치며 집권에 성공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