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포커스] 시민파워, 곳곳서 ‘변화’ 바람

입력 2017-01-03 18:02 수정 2017-01-03 21:34

촛불집회 이후 사회 곳곳에서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광장에서 대통령이라는 권력과 전면전을 펼친 시민들은 이슈별로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사회의 불합리를 변화시켜가고 있다. 대통령 탄핵 의결이라는 성과를 이끌어낸 ‘광장의 기억’이 시민의식을 일깨우고 시민들의 정치적 자신감을 북돋운 것으로 풀이된다.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 과정이 대표적이다. 시민단체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는 한·일 위안부 합의 1주년을 맞아 지난달 28일 일본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세웠다. 하지만 부산 동구청은 소녀상을 도로법상 무단적치물로 보고 소녀상이 설치된 지 4시간여 만에 이를 철거했다.

인터넷을 통해 강제 철거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저항했다. 부산 동구청 담당 부서에는 비난 전화가 빗발쳤다. 동구청 홈페이지 민원 게시판에는 사흘 동안 200건 넘는 항의성 글이 올라왔다. 동구청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300여건의 항의 글이 쏟아졌다. 결국 구청은 지난달 30일 손을 들었다. 시민들은 31일 소녀상을 다시 세웠다.

시민들이 기성 언론보다 한 발 앞서 문제를 지적하고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행정자치부는 지난달 29일 ‘대한민국 출산지도’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이 서비스가 시작되자마자 인터넷에서 ‘여성을 도구화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역별로 가임기 여성 인구수를 표시했기 때문이다.

이 서비스를 안내한 행자부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4000건 넘는 댓글이 달렸다. 네티즌들은 담당 부서 공무원의 연락처를 인터넷에 공개하는 등 항의 방법을 적극적으로 안내했다. 시민들의 저항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비판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결국 행자부는 이 서비스를 공개한 날 바로 서비스를 중단했다. 행자부는 ‘수정 공지문’을 통해 “지역별 출산 지원 혜택을 알리기 위해 제작했다”고 해명하며 “여러분의 의견을 수렴해 계속적으로 수정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도 시민들은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19일 이랜드의 외식사업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지난 1년간 약 83억원에 해당하는 아르바이트 임금을 체불했다고 밝혔다. 이 발표가 나오자 시민들은 이랜드 계열의 업체 리스트를 공유하며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결국 이랜드그룹은 이틀 후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떼인 임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도 안내했다. 시민들은 임금이 제대로 지급되는지 끝까지 감시하겠다는 입장이다. 불매운동을 제안한 엄재희(28)씨는 “우리 삶을 옥죄는 모든 부조리에 불복종하기 위해 불매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직접 나서게 된 배경에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제도권을 통한 문제 해결 방식이 더 이상 옳지 않다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손동영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전 국민이 세월호가 가라앉는 것을 실시간으로 봤는데 정작 정부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2년이 넘도록 드러나지 않고 있다”며 “시민들이 인터넷이라는 공론장을 통해 직접 의견을 내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보가 공개된 상황에서 시민들이 권리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정치 분야뿐만 아니라 일상의 부조리에 대한 저항도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