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화 강세가 연초에도 이어지면서 환율전쟁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소리 없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이다. 오는 20일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자국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달러 가치를 끌어내릴 수 있다는 전망이 현실화될 경우 환율전쟁은 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학계 일각에선 ‘플라자합의’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지난해 미국 대선 뒤 달러화 가치는 가파른 오름세다. 달러인덱스는 지난 2일 기준 102.780포인트를 기록했다. 11월 초와 비교해 5% 넘게 올랐다. 트럼프가 전면에 내세운 인프라 투자를 향한 기대감이 원동력이다. 여기에 지난달 기준금리를 인상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올해도 세 번의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해 상승세는 더 강해질 전망이다.
반면 위안화 가치는 연일 하락세다. 인민은행 산하 외환교역센터는 새해 첫 거래일인 3일 달러 대비 위안화 기준환율을 전 거래일보다 0.18% 오른 6.9498위안으로 고시해 위안화 가치를 절하했다. 절하 폭은 지난달 20일 0.23% 절하 결정을 내린 이래 약 보름 만에 가장 컸다. 위안화 가치는 지난달 16일 달러당 6.9508위안을 기록한 이래 가장 낮아졌다.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면 미국으로서는 무역적자가 커진다. 중국으로부터 제조업 분야 수입 비중이 큰 터라 이른바 ‘러스트벨트’로 불리는 제조업 중심지구 유권자들의 표를 업고 당선된 트럼프로서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정부가 인위적으로 달러 가치를 끌어내릴 가능성도 제기한다. 파이낸셜타임스와 포천 등 유력 경제지는 최근 ‘2차 플라자합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신성환 금융연구원장 역시 지난달 28일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금융포럼에서 “지금 같은 분위기로 미 경제정책이 지속될 경우 플라자합의 같은 사례가 재현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플라자합의는 미국이 1985년 프랑스 독일 영국 일본 등 주요 4개국과 함께 맺은 달러 가치 절하 합의다. 당시 미 정부가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금리를 급격하게 인상하면서 달러화 가치가 급등, 제조업 기업들의 무역적자가 악화했다. 제조업 여론이 악화하자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은 인위적인 달러화 가치 절하 합의를 강압적으로 이끌어냈다. 일부 학계에서는 이로 인해 일본이 장기 경기침체에 빠졌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여전히 대부분 전문가들은 2차 플라자합의의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보진 않는다. 당시와 달리 각국 경제상황이 나쁘다는 이유에서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당시엔 합의 대상인 일본이나 독일이 큰 흑자를 봤기에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다”면서 “합의가 나온다면 현 상태를 안정시키는 내용일 텐데 그마저 트럼프의 입장을 봤을 때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양국의 환율 갈등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이다. 최근 원화가 위안화를 따라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터라 잘못하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중 간 환율전쟁은 위안화와 일정 부분 동조화 현상을 보이는 원화 가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원화 환율 변동 리스크가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 원장 역시 “원화는 기축통화가 아니라는 일종의 ‘원죄(Original Sin)’를 지녔다”면서 “외화 유동성을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기획] 美·中 ‘쩐의 전쟁’ 전운… FT “2차 플라자합의 나올수도”
입력 2017-01-04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