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신지는 청도군 화양읍 고평리에 있는 연지(蓮池)로 ‘오부실못’이라고도 한다. 양쪽에는 나지막한 산들이 둘러서 있고 저수지 내에는 연이 가득하다. 겨울이면 여름내 화려하게 피었던 연꽃이 사라지고 묵은 연줄기들이 앙상한 가지에 흔적들만 남기고 고개 숙인 독특한 모습으로 장관을 이룬다. 시들어서 꺾인 연줄기와 잎이 물에 반영으로 비쳐 환상적인 기하학적 무늬를 만들어낸다.
어린아이들의 낙서 같기도 하고, 자연의 음표 같기도 하며, 피카소의 추상화 작품 같기도 하다. 세모, 네모, 하트, 꽃, 나비, 물고기, 새, 큐피드 화살…. 기묘한 형태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달라 보이는 상형문자들이다.
석양이 황금빛으로 물들자 배고픈 오리들이 먹이를 찾아 마른 연잎 줄기 사이를 누비고 다닌다. 황금빛의 원천인 태양은 하늘에도, 물속에도 있다. 일몰 무렵 역광에 비치는 연지의 물빛은 사랑하는 연인들의 가슴처럼 타오른다. 사랑과 그리움이 한꺼번에 배어난다. 연못 건너편 둑 위로 난 도로 위를 달리는 마을버스나 자전거를 탄 사람은 풍경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이 같은 풍경이 아름다워 사진가들에게 출사 명소가 됐다.
혼신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청도읍성이 있다. 읍성은 고려 때부터 있었는데 조선 선조 때 청도군수 이은휘가 석축으로 다시 쌓은 것이다. 향교와 도주관, 동헌 등도 있다. 둘레 약 1.9㎞의 크지 않은 읍성에는 아직도 복구공사가 이어지고 있다. 이곳의 볼거리는 읍성과 읍성 주변이다. 옛 건물을 이어 주는 것은 마을의 골목. 집집마다 담장 위로는 감나무가 가지를 드러냈다. 성벽 위에 오르면 전경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읍성 한켠에 보물323호 석빙고가 있다. 석빙고 앞 작은 비석에는 조선 숙종 39년(1713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는 ‘계사(癸巳)년’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공사에 동원된 사람들의 이름도 적혀 있다.
흙으로 덮여 있는 경주의 석빙고와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반원으로 만들어진 돌 뼈대 4개만 남아 있어 구조가 다 보인다. 길이가 15m에 육박하는 창고의 바닥은 사각형으로 경사지게 하고 중앙에 배수구를 만들어 얼음 녹은 물이 빠져 나가게 했다. 단단한 화강암을 써서 아치형 천장을 만들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데 서로를 지지하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현존하는 석빙고 가운데 축조 연대가 가장 오래 됐다고 한다.
청도 감은 반시라고 부른다. 납작한 모양이 쟁반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청도 반시는 ‘씨 없는 감’이다. 조선 명종 1년(1545년)에 이서면 신촌리 세월마을 출신인 박호 선생이 평해군수로 재임하다 귀향하며 중국에서 전래됐다는 감나무의 접지(接枝)를 무 속에 꽂아 와 청도 감나무에 접목하자 씨 없는 감이 열렸다고 한다.
암꽃만 맺는 암감나무만 자라는 것이 청도 감에 씨가 생기지 않는 이유란다. 청도의 분지 지형이 씨 없는 감을 만드는 데도 영향을 준다는 견해도 있다. 청도천에서 아침마다 피어난 물안개는 산줄기에 막혀 잘 걷히지 않는다. 이는 벌의 수분 활동을 방해해 감에 씨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도 반시는 육질이 연하고 당도와 수분 함량이 높아 홍시 중 최고로 꼽힌다. 물기가 많기 때문에 곶감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떫은 감이어서 생으로 먹을 수 없어 반드시 탈삽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주일 정도 숙성시켜 홍시로 먹거나 살짝 말려 건시로 먹는다.
화양읍 송금리 청도 와인터널에 가면 감와인을 맛볼 수 있다. 와인터널은 원래 1904년 완공된 길이 1015m의 경부선 남성현 터널로, 1937년 아랫마을에 복선터널이 생기며 폐쇄됐다. 사시사철 내부 온도 15∼16도, 습도 60∼70%를 유지하는 터널은 천혜의 ‘와인 저장고’다. 와인을 소재로 한 드라마 ‘떼루아’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철길을 따라 와인터널 속으로 들어가면 마치 판타지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폭 4.5m, 높이 5.3m로 촘촘히 쌓여 있는 붉은 벽돌이 1㎞ 넘게 이어지는 터널에서 저장고와 시음장, 레스토랑 등의 시설을 만나게 된다.
청도의 먹거리로 청도추어탕이 있다. 추어탕이지만 미꾸라지가 거의 들어 있지 않다. 자연산 미꾸라지의 부족으로 민물고기만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민물고기를 푹 끓여 낸 뒤 체에 밭쳐 살을 손으로 뭉개고 우거지 등을 넣어 끓여내는 것이다. 청도역 주변에 청도추어탕거리가 조성돼 있다.
청도=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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