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재취업에 도전한 최모(30·여)씨는 퇴사를 후회한다. 5년 전 대학을 졸업한 뒤 일자리를 구했지만 직장생활은 평소 그리던 모습과 달랐다. 새로운 직장에서 새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 3년 만에 퇴사를 결심했다. 행여 신입 공채로 취업하지 못하더라도 경력직으로 일자리를 구하면 된다는 플랜 B도 있었다.
과감히 사표를 던진 해에는 취업이 안 됐다. 최씨는 초조해졌다. 주변에서는 공공기관이 아니고서야 여성은 만 30세가 취업의 끝자락이라고 했다. 뒤늦게 경력직도 알아봤지만 불경기에 마땅한 자리가 나지 않았다. 최씨는 지난해에도 맥없이 취업에 실패했다. 구직으로 2년을 보내고 서른이 되었다. 그는 “30대에 접어들면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기분”이라며 “요즘 같은 취업 한파에 꿈만 바라보고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으면 말리고 싶다”고 한탄했다.
새해를 맞은 30대 취업준비생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채용시장에 여전히 나이 상한선이 암묵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30대 취준생들은 생활·교육비 등 경제적 압박 등에 시달리며 분투하지만 어린 경쟁자들보다 돋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위축되기 일쑤다.
취준생 연령대는 올라가는 추세다. 취업사이트 사람인이 지난해 11∼12월 기업 649개사를 조사한 결과 61.5%가 신입 채용에서 구직자 나이가 높아지고 있다고 답했다. 신입사원을 채용한 기업 498개사에 몰린 지원자 가운데 30대 비율은 평균 42%였다. 안수정 잡코리아 과장은 “점차 취업문이 좁아지면서 구직자들의 구직기간이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연령 상한선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앞선 설문에서 신입사원의 연령 상한선이 있다고 대답한 기업 56.4%의 상한선을 평균 내어 보니 남성은 31.3세, 여성은 29.9세였다. 적정연령이 있다고 답한 기업 333개사는 남성 28.2세, 여성 26.4세가 적정연령이라고 답했다. 취준생 이준영(29)씨는 “나이가 많은 취준생은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걸 실력으로 증명해야 한다”며 “나이에 맞는 토익 점수를 알려주는 공식도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30대 취준생들은 경제적 부담이 크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안정적인 소득이 없는 취준생에게 주거비와 교육·생활비 등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며 “특히 30대 취준생은 대학생과 달리 부모에게 손을 덜 벌리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어 경제적 부담이 더욱 심하다”고 지적했다.
입사 연령 마지노선은 직장 내 위계질서와 편견 때문이다. 안 과장은 “조직 위계질서를 생각해야 한다는 입장과 늦게까지 취업을 못했으면 이유가 있다는 편견이 기업 내에 굳어져 있다”고 전했다. 그는 “30대 신입사원도 있긴 하지만 그 수가 적고 기간도 오래되지 않아 채용 나이의 기준이 되는 신입사원 평균 연령이 당장 높아졌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도 “나이에 따른 연공서열 문화가 기업에 암묵적 예규처럼 남아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업 입장에선 취준생들이 갖춘 스펙이 원하는 인재상과 어긋나는 것도 신입사원의 연령을 고려하는 원인이다. 박 연구위원은 “취준생이 개인적인 비용을 들여 만든 스펙이 막상 기업 현장에서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며 “결국 기업은 처음부터 신입사원을 가르쳐야 하는데 나이가 많은 신입사원에게는 교육에 충분한 시간을 쓰기 부담스러워진다”고 풀이했다.
좋은 일자리가 갈수록 줄어드는 점도 원인이다. 이 교수는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30대 취준생들은 늘어나고 있는데 대기업에 몰리는 지원자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며 “기업 입장에선 많은 경쟁자들 가운데 굳이 나이 많은 사람을 뽑을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취업·재교육 등 사회안전망을 먼저 갖춰야 하고, 중소기업에서도 대기업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 대기업 쏠림현상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도 인식과 관행을 바꿔야 한다. 박 연구위원은 “고령화·저성장·정년연장 시대에 맞춰 기업이 새로운 유형의 신입사원을 유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고용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글=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기획] ‘서러운 서른 살’… 스펙 쌓다보니 취업 마지노선
입력 2017-01-0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