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 같은 유럽축구에서 공격수로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해결사 능력을 의심받는 순간 주전 자리는 경쟁자에게 넘어간다. 많은 공격수들이 벤치로 밀려났다가 결국 도태됐다. 하지만 일부 공격수는 ‘슈퍼서브(Supersub·교체로 출전해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선수)’로 탈바꿈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날 공격수 올리비에 지루(31)는 지난 2일(한국시간) 크리스털 팰리스와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19라운드 홈경기에 출전해 전반 17분 멋진 ‘스콜피온 킥(전갈 킥)’으로 결승골을 터뜨려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루는 어린 시절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무명이었다. 21세가 되어서야 프로팀과 계약을 했다. 5부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08년 2부 리그의 투르 FC에 입단하며 도약 기회를 잡았다. 2009-2010 시즌 21골을 터뜨리며 2부 리그 득점왕과 올해의 선수상을 휩쓸었다. 2010년 7월 1부 리그의 몽펠리에로 이적한 그는 2011-2012 시즌 21골을 넣어 득점왕에 올랐다.
2012년 7월 아스날에 입단한 지루는 당시 특급 골잡이 로빈 판 페르시(34·페네르바체)의 백업이었다. 아스날의 ‘무관 징크스’에 질린 판 페르시가 2012년 8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떠나자 지루는 아스날의 주전 스트라이커 자리를 맡았다. 지루는 네 시즌 연속 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주전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이번 시즌 측면 공격수였던 알레시스 산체스(29)에게 주전 최전방 공격수 자리를 빼앗겼다.
슈퍼서브로 탈바꿈한 지루는 리그 12경기(교체 10·선발 2경기)에서 350분 동안 5골을 기록하며 맹활약 중이다. 3일 영국 언론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올 시즌 EPL에서 5골 이상 넣은 선수들 중 지루는 69.8분 당 한 골을 기록하며 1위에 올라 있다. 2위인 세르히오 아구에로(29·맨시티)의 103.9분당 한 골 기록과 상당한 격차다.
EPL 리버풀 공격수 디보크 오리지(22)도 이번 시즌 주로 교체로 투입돼 ‘크랙(혼자 힘으로 경기 흐름을 바꾸는 선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14년 7월 릴 OSC(프랑스)에서 리버풀로 이적한 그는 지난 시즌 리그 16경기에서 5골로 EPL에 안착했다. 이번 시즌엔 주로 교체 멤버로 활약하며 리그 17경기에서 4골을 기록 중이다. 리그컵 4경기까지 포함하면 7골을 넣었다.
팀원들의 신뢰도 높다. 리버풀 주장 조던 헨더슨은 “오리지는 시즌 초반 많은 출장 기회를 보장받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꾹 참고 열심히 뛰었다”고 격려했다.
이탈리아 세리에A의 AS 로마 공격수인 노장 프란체스코 토티(41)도 슈퍼서브로 현역생활의 마지막을 의미있게 보내고 있다. 1992년부터 AS 로마에서 뛰고 있는 원클럽맨 토티는 체력 저하와 부상으로 지난 시즌부터 교체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축구통계업체인 옵타에 따르면 토티는 지난해 리그 17경기 448분을 소화하는 동안 6골을 넣었다. 74.67분당 1골로 시간 당 득점 1위에 오르는 등 높은 순도를 보였다. 게다가 토티는 그라운드에 들어서면 팀원들의 사기가 고양되고 경기장 분위기가 들뜨는 등 이른바 ‘토티 효과’를 가져와 단순한 골 이상의 영향을 주고 있다. 토티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활약은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손흥민(25·토트넘 홋스퍼)과 이청용(29·크리스털 팰리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손흥민은 이번 시즌 리그 16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한 경기는 5경기밖에 되지 않는다. 6경기에서 교체 아웃됐고, 5경기에서 교체로 투입됐다. 특히 최근 4경기 중 3경기에서 후반 중반 이후 교체로 들어갔다. 리그 6골 5도움으로 선전하고 있는 손흥민이 주전 자리를 되찾으려면 주어진 슈퍼서브라는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해야 한다. 이청용도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슈퍼서브로 변신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글=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주전 뺨치는 ‘슈퍼서브’ 전성시대
입력 2017-01-04 04:02 수정 2017-01-04 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