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 겨울 방학이면 블록버스터 전시가 봇물을 이룬다. 올해도 오르셰미술관전과 르누아르전이 스타 작가들의 지명도를 앞세우고 있고, 체코 디자이너 알폰스 무하와 오스트리아 생태주의 건축가 훈데르트 바서가 가세해 풍성한 목록을 만들고 있다. 모두 매력적인 전시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한 장의 티켓을 끊으라면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의 ‘르코르뷔지에전’을 고른다. 창조적 영감과 혁신의 아이디어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공동디렉터로 참여한 한양대 정진국 교수는 “유행에 민감하되 근원이 약한 국내 건축계에 가치의 문제를 본격 제기하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현대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대가의 전시가 일본에서 최근 10년 동안 세 번씩이나 이뤄지는 동안 우리는 20년 전인 1996년 학고재에서 한 차례 열렸을 뿐이다. 일본이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6명 배출한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르코르뷔지에(1887∼1965)는 누구인가.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미술가, 도시계획가, 건축가, 디자이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잇는 전방위 예술가로 꼽힌다. 생전의 스티브 잡스가 고집했던 그 유명한 LC3 의자의 제작자다. 젊은 친구들은 아이돌그룹 빅뱅 멤버 탑의 활동을 통해 이름을 익혔겠다. 오래전에 디자인이나 건축을 공부한 사람들은 ‘꼬르뷔’ 혹은 ‘꼴 선생’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전람회를 돌아보면 문화는 인간에 대한 끝없는 탐색의 결과물임을 증명하고 있다. 초입의 롱샹성당은 VR기기를 통해 성당 안팎과 주변 풍광까지 볼 수 있다. 1955년 프랑스 성직자들은 위압적인 건물이 아니라 영혼의 안식을 위한 공간을 간청했고 그는 비정형의 파격적인 건물을 언덕 위에 올려놓는 것으로 응답했다. 지금은 종교인뿐만 아니라 건축가들이 무릎을 꿇는 순례지가 됐다. 지금 우리 교회 건축은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돕고 있는가. 천년건축을 꿈꾸기는 하는가.
보통의 건축전이 패널이나 사진 위주인 데 비해 코르뷔전은 미술의 여러 장르를 망라한 점이 돋보인다. 출품된 그림은 무려 300여점. 탁월한 건축적 상상력이 회화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다. 피카소와 맞짱 뜬 순수주의 화풍의 창시자답게 1점이 100억원을 웃돈다. 우리 건축가들의 데생 실력은 어떤가. 인문과 예술, 공학이 만나는 로터리가 건축일진대, 어느 지점에서 배회하고 있는지 코르뷔 선생이 묻고 있다.
아파트에 대한 태도도 그렇다. 코르뷔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파리의 서민들과 저소득노동자들이 비위생적인 주거환경에 놓여 아이들이 죽어나가자 적은 돈으로 집을 마련하기 위해 집합주택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제시했다. 이게 높은 층고에 콘크리트를 사용한 오늘날 아파트의 출발이다. 숭고한 사랑에서 출발한 아파트가 오늘날에는 거대한 욕망이 꿈틀거리는 부동산으로 전락했다. 기술만 남고 정신은 잃어버린 탓이다.
그는 늘 서민들을 위해 작지만 행복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고, 인간 신체를 분석한 모듈러 이론을 개발해 건축에 적용했다. 인간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이 4평이라는 주장을 내놓자 아인슈타인은 “세상을 바꿀 만한 엄청난 연구”라고 칭찬했다. 그는 말년을 남프랑스 지중해변의 4평짜리 오두막집에서 보낸 실천가이기도 했다.
지난해 유네스코는 7개국에 산재한 그의 건축물 17개를 세계문화유산에 올렸다. 하나같이 시대정신을 고민한 혁신의 산물이다. 문화는 이렇듯 자유롭고 창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싹트고 자라 역사를 이끄는 동력을 공급한다. 작금의 블랙리스트 파동은 인간과 문화에 대한 공부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다. 근본이 흔들리면 자신이 없고 불안한 법이다. 르코르뷔지에전은 그런 가르침을 주기에 알맞다.
손수호(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
[청사초롱-손수호] 코르뷔 선생이 던지는 질문
입력 2017-01-03 1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