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건물에 치킨집만 여섯개… 빚으로 버틴다

입력 2017-01-03 00:03

서울 강북구에 사는 택시기사 강모(58)씨는 4년 전만 해도 ‘노래방 사장님’이었다. 다니던 중소기업을 그만두고 차린 노래방은 초기에 지인, 전 직장 동료 등이 자주 찾으면서 어느 정도 수익을 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시설관리와 임대료 부담 등이 커지자 2년6개월 만에 노래방을 접었다. 손익 성적표는 3000만원 적자였다. 강씨는 치킨집이나 고깃집도 생각해 봤지만 결국 운전대를 잡았다. 그는 “매월 내야 하는 사납금이 부담스럽지만 ‘밑지는 장사’가 될 게 뻔한 자영업보다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영업자의 폐업률이 치솟고 있다. 은퇴한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자)들이 치밀한 준비 없이 호구지책으로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잦다. 자영업자의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가파르게 오르는 중이다. 긴 경기침체에다 ‘김영란법’ ‘탄핵 정국’으로 소비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요식업을 중심으로 한계상황에 내몰리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

자영업 무한 ‘치킨게임’

치킨집이 어렵다는 것은 다 알지만 달리 대안도 없는 형편이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 인접한 한 주상복합 건물에는 동서남북 사면에 치킨집만 여섯 곳이다. 찜닭집도 하나 있다. 다닥다닥 붙어 무한경쟁을 벌이는데, 조류인플루엔자(AI)와 연말연시 특수 실종으로 어느 때보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다.

2일 오후 큰 양푼에 담긴 생닭을 손질하던 50대 후반 여주인은 “지난달 손님이 절반으로 줄었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BC카드가 지난해 말(11월 21일∼12월 20일) 신용카드 빅데이터를 집계한 결과, 치킨·호프·소주방 등 주점업종의 카드 결제 건수는 2015년 같은 기간보다 10.4% 줄었다. 결제 액수도 8.6% 감소했다.

자영업은 경기에 민감하기 때문에 ‘빚 부담’은 더 크게 다가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자영업자의 소득 대비 가계대출 비율(LTI)은 345.8%나 된다. 2015년 말 328.2%보다 17.6% 포인트 급증했다. 자영업자의 대출액은 465조5000억원 수준이다. 한은은 “자영업자의 경우 소득이 경기변동에 민감하고 창업과 폐업도 빈번해 안정적 부채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매일 2000명 폐업

이날 국세청이 발간한 ‘2016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자영업자의 연간 폐업률이 70%에 이른다. 자영업에 나선 3명 가운데 채 1명도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다.

2015년 기준으로 창업한 개인사업자는 106만8000명이다. 하루 평균 3000명이 자영업에 뛰어든 셈이다. 반면 같은 해에 폐업한 개인사업자는 총 73만9000명으로 매일 2000명이 사업을 접었다.

업종별로 치킨집을 포함한 음식업 폐업률이 84.1%로 가장 높다. 2015년 창업한 음식업 사업주는 18만2000명으로 전체 업종 가운데 네 번째로 많았다. 비중으로 따지면 17.1%다. 하지만 폐업한 자영업자 수에선 음식업이 전체의 20.6%로 1위다. 2015년 15만3000명이 음식업 사업을 접은 것으로 집계됐다.

폐업률 2위는 소매업(78.2%)이다. 18만8000명(17.6%)이 소매업으로 창업에 나섰지만 14만7000명(19.9%)이 그만뒀다. 이어 20만9000명(19.6%)이 창업을 했지만 14만6000명(19.7%)이 문을 닫은 서비스업이 69.9%로 폐업률 3위에 올랐다. 이와 달리 부동산·임대업은 20만5000명(19.2%)이 창업한 뒤 9만1000명(12.3%)이 폐업했고, 폐업률은 44.4%로 주요 업종 중에서 가장 낮았다.

최근 자영업자는 증가세를 보인다. 노후 준비가 되지 않은 베이비붐 세대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청년들이 창업 전선에 뛰어들어서다. 산업 구조조정으로 퇴직자가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6월부터 13개월 연속 전년 대비 감소했던 자영업자 수는 지난해 8월과 9월에 잇따라 8만명 안팎의 급증세를 보였다. 전년 같은 달보다 8월에 7만9000명, 9월에 8만6000명이 늘었다.

그러나 특별한 기술 없이 문턱 낮은 음식·소매업 위주로 진출하다 보니 시장은 포화됐고, 이들 업종에서 사업을 접는 비율도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글=우성규 홍석호 기자, 세종=유성열 기자 mainport@kmib.co.kr, 일러스트=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