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없는 조현병 대책

입력 2017-01-04 19:17

지난해 5월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발생 후 정부는 제2의 강남역 살인사건을 막기 위해 ‘여성대상 강력범죄 및 동기없는 범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에는 정신질환자 응급입원 조치 및 행정입원 요청 방안, 보호수용제도 도입 추진 방안 등 중증 정신질환자 조기 발굴 체계 마련뿐 아니라 강력한 환자 관리 방안이 포함됐다. 발표 직후 여성·인권·노동 관련 시민단체 50여 곳이 기자회견을 통해 대책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촉구하며, 정신질환자를 범죄자로 낙인 찍어 사건의 원인을 정신질환자에게 전가한 것에 대해 분명히 사죄하라고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각 분야 전문가들과 긴급토론회를 열어 정부가 종합대책을 통해 정신질환자를 사회에서 배제하고 격리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신과의사회, 신경정신의학회, 조현병학회 등 전문가 단체들도 정부가 전문가 의견을 무시한 채 정신질환 환자들에게 낙인을 찍으려 한다며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세계보건기구(WHO)도 환자 인권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러한 정부 조치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환자들을 강제 입원시킬 것이 아니라 낙후된 정신질환 치료환경을 개선해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먼저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현병 치료 성패, ‘꾸준한’ 약물 치료에 달렸다=조현병 환자의 원활한 사회 복귀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효과적인 증상 조절과 재발 방지를 위한 꾸준한 약물 치료다. 조현병 환자를 돕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더라도 환자의 증상조절이 되지 않아 재발이 반복된다면 사회 복귀 가능성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현병 환자는 질병 특성상 약 복용을 쉽게 잊을 수 있고 자신의 질병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 환자가 매일 약을 챙겨 복용하기란 쉽지 않다. 다수 연구에서는 외래 통원치료를 받는 조현병 환자 중 약을 꾸준히 복용하는 환자를 50% 미만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환자의 자의적 복약 중단은 조현병 증상이 재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최근 개발된 것이 장기지속형 치료제다. 장기지속형 치료제를 사용할 경우 복약 순응도가 높아져 증상 재발 방지는 물론 질환을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어 사회 복귀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한 달 10만원 이상의 비용 때문에 의료급여를 받는 조현병 환자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정신질환 환자의 외래 의료급여, 아메리카노 한 잔 값만도 못해=국내 정신질환 환자는 건강보험 또는 의료급여의 지원을 받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환자들은 질병으로 인해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높아, 많은 경우 의료급여에 의존해 치료를 받는다. 실제 정신질환 환자는 의료급여 수급자 중 상당 수를 차지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중증정신질환인 조현병이 입원 및 외래 항목에서 의료급여 정액수가 진료인원 중 1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급여 지원을 받는 정신질환 환자에게는 진료비, 약제비, 치료비 등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전부를 일정 금액에서 해결해야 하는 정액수가제가 적용된다. 이 경우 건강보험 환자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2770원이 지원된다.

중증정신질환 중 조현병 환자에서 주로 사용되는 경구용 치료제는 1정 당 1400원 가량이다. 매일 1∼2회씩 복용해야 하지만, 2정만 처방해도 이미 약값만으로 정해진 의료급여 지원비를 초과하게 된다. 이처럼 제한적인 정신질환 의료급여만으로는 환자들이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기가 어렵다. 이는 환자의 증상 개선에 도움이 되는 약보다는 저렴한 약을 선택해 병을 악화시키는 악순환 고리가 될 수 있다.

◇기약 없는 정신수가 개선안 환자 마음만 ‘다급’=국내 의료급여 수가는 평균 물가상승률 조차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08년 이후 8년째 동결돼 왔다. 현재 국내 총 보건예산 중 정신보건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0.59% 정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정신보건예산 비중 6%와 비교해도 10분의 1 수준이다. 보건복지부는 2017년 예산안을 통해 정신질환자의 8년 넘게 동결돼 온 의료급여 수가에 대한 개선 의지를 밝혔다. 예산안에 따르면 의료급여 지원을 받는 정신질환자가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의료급여 개선 사업에 211억원을 추가 투입할 예정이다. 그러나 아직 의료급여 개선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밝혀지지 않아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