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반기문 딜레마’

입력 2017-01-03 04:18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가 딜레마에 빠졌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의 연대를 위해서는 친박계가 뒤로 빠져야 할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의 요구처럼 탈당을 하기도 어렵다.

인 위원장의 ‘탈당’ 언급 이후 친박계에 대한 인적 청산은 백의종군이나 2선 후퇴를 넘어선 ‘결단’ 수준까지 기대치가 높아졌다. 친박계 스스로가 ‘폐족의 길’을 선택하라는 압박이다. 인 위원장 등 새누리당 지도부는 “친박 색채부터 지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고, 친박계는 “끌려나갈 수는 없다”고 버티는 중이다.

친박 핵심 홍문종 의원은 2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서청원 의원은 정리가 되면 당을 떠나려고 생각하고 있었고, 최경환 의원은 2선 후퇴를 이미 얘기했다”며 “(전날 모임에서) 인 위원장이 너무하신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고 말했다. 인 위원장이 인민재판식으로 인적 청산을 언급한 건 정도에 어긋난다는 불만 토로다. 친박계가 ‘보수 실패의 책임자’라는 주홍글씨를 받고 물러설 수 없다는 속내도 엿보인다. 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정부의 국정 실패는 주류·비주류 모두의 잘못이지만 친박계가 스스로 2선 후퇴를 선택하는 모양새를 갖추겠다는 구상이다. 헤게모니 다툼에서 내쫓기는 모양새로 비칠 경우 자칫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없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당 내부에 변변한 대선 주자가 없다는 한계가 걸림돌이다. 여권 대선 잠룡들이 대부분 개혁보수신당에 합류하면서 친박 의원들도 ‘반 전 총장 외에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문제인식은 공유하고 있다.

지도부도 어정쩡한 봉합보다 확실한 친박 청산이 필요하다는 압박을 지속하고 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오전 라디오 인터뷰에서 반 전 총장을 언급하며 “(귀국 후) 새누리당이나 보수신당 중 하나를 선택할 것으로 보지만 현재 새누리당은 친박당 도배가 칠해져 있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이 당으로 들어올 자리를 마련하려면 확실한 인적 청산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반 전 총장 영입에 실패할 경우 당의 혁신은 국민의 관심을 받기 어렵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당 고위 관계자는 “계파 청산이 비대위 구성보다 시급하다”고 했다.

인적 청산이 기대치에 못 미칠 경우 중도파 의원들의 탈당 명분도 키울 수 있다. 이미 충청권 의원 상당수는 반 전 총장과 행보를 같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쟁자인 보수신당 역시 반 전 총장 영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새누리당으로서는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서두르면서 정비의 시간도 부족하다.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