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 금지법 유명무실… 中 수학 시험지 35개 중 27개가 ‘극상’

입력 2017-01-02 17:58

중학교 수학 시험에 학교 수업만으론 풀기 어려운 문항들이 여전히 출제되고 있다. 시민단체의 조사에서 여러 개념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계산 과정도 복잡해 학원 등에서 훈련받아야 풀 수 있는 난이도 ‘극상(極上)’ 문제나 상위 학년 과정을 활용하면 유리한 문제들이 적지 않게 확인됐다. 사교육 부담을 줄이고 공교육을 정상화한다는 취지로 2014년 제정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법’(선행학습 금지법)이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은 사교육열이 높은 지역의 중학교 수학 시험 문항을 분석해 2일 발표했다. 서울 강남·양천, 경기 분당, 부산 해운대, 대구 수성, 인천 연수, 광주 남구·북구, 대전 서구, 울산 남구에서 중학교 18곳을 추려 지난해 1학기 수학 기말고사 시험지 35건을 분석했다. 난이도는 극상·상·중·하 4단계로 분류했다. 교육부의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성취기준 및 성취수준’을 기준으로 현직 교사들이 판정했다. 극상 단계는 “교육부 성취기준에 없는 수준으로 여러 개념이 복합적으로 활용되거나 계산 과정이 복잡해 풀이법을 여러 번 반복해 훈련해야 풀 수 있는 문항”으로 정의했다.

전체 문항 가운데 극상이나 상 수준으로 분류된 문항은 41.5%였다. 중 수준 41.6%, 하 수준 16.3%였다. 학교 수업만으로 풀기 어려운 선행학습 유발 문항은 9.3%였다. 35개 시험지 중 극상 수준 문항이 포함된 시험지는 32개(91.3%), 선행유발 문항이 포함된 시험지는 27개(77.1%)였다. 학교 시험이 사교육 기관에서 문제풀이 훈련을 받거나 선행학습을 받은 학생에게 유리하게 출제되고 있다는 의미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관계자는 “교육 당국이 선행출제 여부를 점검하고는 있지만 느슨하게 기준을 적용하는 등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해 선행학습 금지법의 취지를 퇴색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선행출제로 적발된 학교는 15곳이었고, 이 중 수학 과목이 적발된 곳은 1개교에 불과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