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나그네, 거지, 머슴의 가치로 새로운 개혁을

입력 2017-01-02 20:56 수정 2017-01-02 21:40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500년 전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독일 비텐베르크 성교회 정문에 면죄부 남용을 고발하면서 95개조의 반박문을 못 박아 붙였습니다.

그날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를 맞이했습니다. 올 한 해는 ‘개혁(reformation)’이라는 단어가 많이 회자될 것입니다. 사실 물이 흐르지 않으면 썩듯이, 인간사도 늘 새롭게 개혁되지 않으면 타락하고 파멸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개혁은 늘 인간사의 주제가 돼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국민일보와 CBS가 종교개혁 500주년 슬로건을 ‘나부터 □’로 정한 것은 시의적절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부터 개혁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너부터’ 개혁하라고 목소리를 높여왔습니다. 정치가 개혁돼야 하고 경제가, 교육이, 사회가 개혁돼야 한다는 고발이 습관이 됐습니다. 이 개혁의 대상에 교회도 포함돼 있다는 아픈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러나 ‘너부터’ 개혁보다 중요한 것이 있고 먼저 선행돼야 할 것이 있으니 바로 ‘나부터’ 개혁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바로 ‘나부터’ 개혁이었습니다. ‘자기 내면의 개혁’이 먼저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그 한마음’으로 자신에게 무섭게 진지했던 결과, ‘이신칭의(以信稱義)’ 즉 ‘믿음’으로 집약되는 종교개혁의 혼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면서 루터는 기독교에서 귀히 여기는 세 가지 용어를 제시합니다. 오직 믿음만으로, 오직 은혜만으로, 오직 말씀만이면 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중요한 종교개혁의 세 주제를 담아 한국 땅에 사는 모든 백성과 교회가 공감할 수 있는 개혁을 위해 나그네, 거지, 머슴의 삶의 가치를 대안으로 제시해 봅니다.

첫째, ‘나그네’의 삶으로 개혁해야 합니다. 이는 ‘오직 믿음으로만’의 다른 표현입니다. 나그네란 돌아갈 고향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땅은 낯선 곳이요, 언젠가는 떠날 곳입니다. 그래서 나그네로 살려고 할 때 ‘경천애인’, 즉 하늘을 두려워하고 이 땅의 사람을 사랑하는 실천이 가능해 집니다. 돌아갈 하늘이 없다고 믿는 사람은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적자생존’이나 ‘약육강식’이라는 땅의 가치의 노예로 살게 됩니다. 하늘의 뜻으로 살아야 욕심을 내려놓는 게 가능합니다.

둘째, ‘거지’의 삶으로 개혁해야 합니다. 이는 루터 종교 개혁의 둘째 주제인 ‘오직 은혜로만’의 다른 표현입니다. 거지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누군가 있어야 내가 존재할 수 있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부모가 있어야 내가 있고 스승이 있어야 내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내가 있습니다.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돕고 도우며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거룩한 거지로 표현한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은혜의 반대말은 공로입니다. 내가 스스로 무엇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서운 것은 그 말속에 교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존재하게 하는 이웃을 볼 수 있는 마음은 거룩한 거지의 마음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셋째, ‘머슴’의 삶으로 개혁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에게 성경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백성에게는 헌법이 중요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든 헌법이든 머슴의 마음으로 지켜내야 합니다. 머슴은 주인의 말을 지킵니다. 때로는 생명을 바쳐서라도 주인의 말을 지켜야 합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를 맞이해 나그네로 살며 하늘의 가치를 깨닫고 거룩한 거지로 살며 이웃의 소중함을 알고 머슴으로 살며 지킬 것을 지켜내면 한국 땅에 개혁의 물결이 일어날 것입니다.

김철환 목사(기독교한국루터회 총회장) < facebook.com/revdoc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