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신장 201㎝의 거인들이 휘젓고 있는 미국프로농구(NBA) 코트에서 175㎝의 작은 키로 고군분투하는 선수가 있다. 농구공이 손에 달라붙은 듯한 현란한 드리블과 정확한 슈팅, 저돌적인 돌파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리그 최단신 아이재아 토마스(28·보스턴 셀틱스)가 그 주인공이다. 1980년대 슈퍼스타였던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의 ‘동명이인’ 명 가드 아이재아 토마스 3세(전 뉴욕 닉스 사장)가 30년 만에 재림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토마스는 프로 데뷔 전 작은 키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2011년 드래프트에서는 전체 60순위(2라운드 30순위) 꼴찌로 새크라멘토 킹스에 지명됐다.
토마스의 드래프트 동기들은 면면이 화려했다. 1순위가 지난 시즌 팀을 우승시킨 카이리 어빙(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이었고 11순위가 클레이 탐슨(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15순위가 카와이 레너드(샌안토니오 스퍼스)였다. 이들은 데뷔와 동시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주목을 받지 못한 토마스는 데뷔 첫 해인 2011-2012시즌 평균 11.5점으로 성공가능성을 보여줬다. 이후 매년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지만 2014-2015시즌 피닉스 선즈로 이적한 뒤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토마스는 지난 시즌을 앞두고 보스턴에 합류했고 이는 신의 한수가 됐다. 지난 시즌 평균 22.2점으로 폭발적인 득점력을 뽐내며 코트를 누볐다. ‘드래프트 꼴찌’ 출신으로 NBA 사상 처음 올스타에 선정됐다.
상승세는 멈출 줄 모른다. 토마스는 2일 현재 올 시즌 경기당 평균 27.7득점(부문 5위)으로 커리어하이를 기록 중이다. 지난달 21일 멤피스 그리즐리스전에서 44점, 31일 마이애미 히트와의 경기에서 무려 52점을 넣으며 개인통산 한 경기 최다득점을 잇따라 경신했다. 토마스는 지난달 27일 NBA 금주의 선수로 선정됐다. 토마스의 활약 속에 보스턴은 동부 컨퍼런스 3위로 상위권을 질주하고 있다.
토마스의 경기를 들여다보면 토마스 전 사장과 판박이라는 평을 받는다. 플레이 스타일도 유사하고 토마스 전 사장의 키도 180㎝ 초반대로 역시 작은 축에 속했다. 재미있는 것은 둘의 이름이 같은 것도 토마스 전 사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토마스의 아버지 제임스 토마스는 1980년대 최강팀 LA 레이커스의 열광적 팬이었다. 제임스는 1987∼88년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레이커스가 89년에도 당연히 우승할 거라 생각했다. 당시 레이커스의 파이널 상대는 전년도에 맞붙었던 디트로이트였다. 제임스는 “레이커스가 지면 아들 이름을 디트로이트 포인트가드 ‘아이재아 토마스’라고 짓겠다”고 지인들과 호기롭게 내기를 했다.
디트로이트에는 토마스를 비롯해 데니스 로드맨, 조 듀마스 등 거칠기로 소문난 ‘배드 보이즈(Bad Boys)’가 버티고 있었지만 제임스는 레이커스의 우승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디트로이트는 예상을 뒤엎고 4전 전승으로 우승컵을 가져갔다. 내기에서 진 제임스는 결국 갓 태어난 아들에게 아이재아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다만 성경식 표기를 원하는 아이재아 어머니의 주장으로 발음은 같지만 토마스 전 사장의 이름(Isiah)과 스펠이 약간 다른 Isaiah를 사용했다. 아이재아 토마스(3세)는 이듬해에도 디트로이트에 우승을 안겼으며 94년 은퇴하기 전까지 올스타 12회 선정에 빛나는 슈퍼스타였다. 그의 등번호 11번은 디트로이트의 영구결번이 됐다.
워싱턴대 재학 시절 토마스는 토마스 전 사장을 우연히 만나 인연을 맺었다. 토마스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동명이인 스타인 토마스는 실제 나의 멘토 중 한명이다. 코트 안팎에서 각종 조언을 듣고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에게는 원망스런 라이벌팀의 선수명을 부여받은 아들은 약 30년 후 과거의 아이재아처럼 NBA 무대를 주름잡고 있다. 작은 키에도 장신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화려한 묘기를 부리는 아이재아 토마스의 플레이에 팬들은 환호한다. 아이재아 토마스가 디트로이트의 아이재아처럼 코트를 평정하며 팀에게 우승을 안기는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농구팬으로서는 즐거운 일이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기획] NBA 꼬마, 거인들 갖고 논다
입력 2017-01-03 04:02 수정 2017-01-03 1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