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검열 문제로 예술계와 내내 갈등을 일으켰다. 연극계는 이에 조직적으로 대항해 왔다. 특히 젊은 연극인 중심의 예술계 종사자 2200여명이 가입한 네트워크 ‘대학로X포럼’은 현안이 있을 때마다 토론회 개최, 선언문 발표, 릴레이 시위 등 다양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냈다.
지난해 6월초 개막해 5개월간 21개 극단이 참가해 22개 작품을 공연한 ‘권리장전2016-검열각하’ 페스티벌도 대학로X포럼과 손잡고 검열 이슈를 더욱 확산시켰다.
연극계는 박근혜 정부의 검열 및 블랙리스트 실상을 담은 검열백서를 준비 중이다. 지난해 11월 대학로X포럼 심야 토론회에서 검열백서 발의에 대한 논의가 처음 촉발된 후 50여명의 연극인들이 ‘검열백서 준비위원회’를 만들었고, 지난달 발족포럼을 열었다. 오는 3월초 공식 출범하는 위원회는 1년간의 조사 연구 등을 거쳐 내년 초쯤 백서를 출간할 예정이다.
검열백서 제작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연극평론가 김소연(49)과 극작가 겸 연출가 김재엽(45)을 최근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만났다. 김소연은 페이스북을 거점으로 한 대학로X포럼의 관리자이고, 지난해 연극 ‘검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을 선보인 김재엽은 검열백서 제작을 처음 제안한데 이어 준비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았다.
김재엽은 “10월 중순 블랙리스트 명단이 나온 뒤 11월 4일 예술인 8000명의 시국선언이 있었다. 당시 서명과 시국선언도 중요하지만 검열 문제를 좀더 논의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소연 역시 “2014년 서울연극제 대관 탈락 사건부터 박근형·이윤택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 탈락 등 검열 사례 수십여건을 있는 그대로 기록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연극인들이 백서 제작에 나선 것은 검열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단순히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을 넘어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잊지 말자는 것이다. 나아가 연극 지원의 공공성, 예술 행정가들의 부역, 연극계의 시스템 등 한국 연극계의 여러 문제에 대한 담론을 끌어내길 기대하고 있다.
김소연은 “검열 관련 개별 사건들을 모으다 보면 우리 문화예술계에서 검열이 작동하는 원리 같은 맥락이 보일 것”이라면서 “박근혜 정권의 경우 문서 위조가 아니라 정책 자체를 움직인 것이 눈에 띈다. 예술가와 예술행정가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용인했다. 문화예술계 구조가 허약한 상황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잘못이 잊혀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백서에는 검열과 관련한 문화체육관광부·예술위·국공립 예술단체 임직원, 각종 심사에 참여한 예술계 관계자의 실명이 그대로 실리게 된다. 준비위원회는 조사작업을 벌이고 내부 고발을 받는 한편 이를 토대로 해당 관계자들에게도 질문을 던질 예정이다. 이를 위해 최근 ‘부역자’의 기준에 대해 토론을 열기도 했다.
김재엽은 “우리가 수사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부역자 여부에 대한 죄를 묻기 어렵다. 또한 당사자들이 끝까지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권력의 단맛을 누린 뒤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밝힐 필요가 있다. 예술계 관계자가 대선 캠프에 들어간 것은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대선 이후 예술기관의 대표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검열 등의 문제에 가만히 있는 등 부역했던 것은 반드시 비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화예술이 다시는 권력의 친위대 역할을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김소연 “검열 반복 안되게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것” 김재엽 “더이상 권력 친위대 용납 안돼”
입력 2017-01-0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