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박영신’… 2016년 마지막 날에도 100만 촛불 밝혔다
입력 2017-01-01 18:52 수정 2017-01-01 18:53
시민들은 2016년을 마무리하는 31일에도 광화문광장에 나와 촛불을 밝혔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 만큼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집회 참가자들은 ‘새해에는 정권교체’ ‘하야뉴이어’ ‘박근혜는 조기탄핵’ 등 피켓을 들고 박근혜정권의 퇴진을 촉구했다.
지난 10월 29일 시작해 10주간 계속된 촛불집회의 누적인원은 이제 1000만명을 넘어섰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은 이날 서울 100만명, 지역 10만여명이 운집해 집회 참가 연인원이 1000만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서울 6만5000명, 지역 1만8000명으로 추산했다.
퇴진행동은 10차 촛불집회 주제를 박 대통령을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의미로 ‘송박영신’으로 정했다. 오후 7시 시작된 본 행사에서 세월호 미수습자 유족,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족,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이 발언을 이어갔다. 미수습자 허다윤양의 어머니 박은미씨는 “다윤이가 돌아오지 못한 지 1000일이 다 되어간다. 미수습자 9명이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기도해 달라”며 흐느꼈다. 조 교육감은 “4·19세대와 87년세대가 평생 자부심을 품고 살 듯 여러분도 촛불시민혁명을 이끈 2016세대라는 자부심을 가지라”고 당부했다.
그룹 시나위의 신대철씨가 들국화의 전인권씨와 함께 무대에 올라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자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행사 뒤 시민들은 청와대·총리공관·헌법재판소 앞 100m까지 행진했다. 종로, 명동 일대 도심에서도 행진이 이어졌다. 행진대열은 오후 11시쯤 종로2가 보신각 타종식에 합류했다.
새해에도 촛불집회 열기는 계속될 예정이다. 퇴진행동은 오는 7일을 ‘새해 첫 범국민행동의 날’로 정하고 세월호 참사 1000일째인 9일을 맞아 희생자를 추모하고 진실규명을 요구할 계획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뜻 깊은 연말
한 해의 끝을 가족과 함께 의미 있게 보내려는 사람들로 광화문광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집회가 평화 기조를 유지한 덕분에 유모차 부대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오전 6시 김해에서 출발했다는 이지훈(42)씨는 가족, 동생 가족과 함께 집회에 참가했다. 이씨는 “아이와 조카들에게 생생한 집회 현장을 보여주고 가족끼리 뜻 깊은 연말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고덕순(40·여)씨도 딸 배지연(10)양과 함께 울산에서 올라왔다. 고씨는 “딸이 광화문광장의 열기를 직접 느끼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참가했다”고 했다.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뿐만 아니라 부모님을 모시고 나온 청년들도 적지 않았다. 직장인 최준엽(31)씨는 진주에서 올라온 부모님을 모시고 집회에 참가했다. 이번 집회가 5번째라는 최씨는 “부모님께서 한 달 전부터 31일 집회에 꼭 참석하고 싶다고 하셔서 함께 나왔다”며 “힘들어도 집회 동력이 떨어질까 걱정돼 31일인 오늘도 나왔다”고 했다.
“새해에는 더 좋은 나라 됐으면”
참가자들의 새해 소망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같았다.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사회가 되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구민진(14)양은 “그동안 공부하느라 바빠서 못 나왔지만 오늘은 마지막이라 꼭 나오고 싶었다”며 “박 대통령이 빨리 자리에서 내려오고, 중학생들조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국정 역사교과서가 내년에는 철회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직장인 임정애(26·여)씨도 “빨리 박 대통령이 사퇴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 오전부터 구미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며 “새해에는 좀 더 좋은 나라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직장인 고병건(32)씨도 “10주째 시민 수십만명이 광장에 모인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문제가 있다는 데 공감하기 때문”이라며 “탄핵뿐만 아니라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조금씩이라도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교사 부부 박언진(48·여)씨와 김문규(50)씨는 “내년에 이곳에서 박 대통령 탄핵을 축하하는 집회가 열렸으면 좋겠다”며 “국정 역사교과서, 사드배치 등이 철회되고 건강한 정권이 들어섰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전직 교사 임우택(60)씨도 “공의(公義)와 정의(正義)가 하수처럼 흐르는 그런 세상이 당장엔 오지 않겠지만 정유년에는 이를 지향하는 토대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