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트럼피즘… 브렉시트… ‘회색 코뿔소’ 1, 2위

입력 2017-01-03 04:00
올해 우리 경제의 기상도는 무척 어지럽다.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소규모 개방경제엔 ‘메가톤급 태풍’이 될 수 있다. 우리 내부에서 ‘시한폭탄’으로 자라는 가계부채, 내수 부진은 저성장 기조를 더욱 고착화시킨다.

이런 난기류를 반영하듯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30일 종무식에서 ‘초불확실성의 시대’라는 개념을 언급하며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총재는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전 하버드대 교수가 1977년 발간한 저서에서 ‘불확실성의 시대(The Age of Uncertainty)’를 언급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이 표현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초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신조어가 나왔다”고 했다.

또 이 총재는 “새해에는 ‘블랙스완(Black Swan·가능성이 낮지만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을 가져오는 사건) 리스크’보다 이미 알려진 위험 요인들이 빠르게 다가오는 ‘회색 코뿔소(Gray Rhino·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경고 신호를 내뿜으며 돌진하는 위기)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는 “새해에도 우리 경제는 대내외 여건의 높은 불확실성에 둘러싸여 있다. 이미 알려진 위험 요인들이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 위험요인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경제, 그리고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회색 코뿔소’는 무엇일까. 한국은행은 내부의 국제업무 담당자 120명, 외부의 정책고객 8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올해 글로벌 경제 이슈 10가지를 뽑았다.

트럼피즘, 그리고 브렉시트

지난해 글로벌 경제는 트럼피즘(트럼프를 향한 대중의 열광)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라는 두 개의 허리케인에 휘청였다. 한국은행이 꼽은 올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할 최대 변수 1위와 2위도 이것이다.

세계는 새롭게 출범하는 미국 행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이목을 모으고 있다. 경제대국 미국이 어떤 자세,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세계 경제는 물론 개별 국가 경제가 격랑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바탕을 둔 재정부양, 규제완화,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재정부양 정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2∼3년간 미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보호무역은 미국의 수출 감소, 이민제한은 장기적인 노동공급 축소를 불러온다. 특히 보호무역은 글로벌 교역 위축을 유발해 세계 경제에 하방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브렉시트는 EU 결속력 약화를 부를 또 다른 ‘회색 코뿔소’다. 회원국 탈퇴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다른 나라로 전염효과가 우려되는 등 EU의 결속력이 약화되고 있다. EU 주요 회원국에서 반이민·반EU 정당 지지율이 높아지는 것도 이런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EU는 영국과의 탈퇴 협상, 올해 예정된 주요국의 선거 결과(3월 네덜란드 총선, 4∼5월 프랑스 대선, 9∼10월 독일 총선)에 따라 출렁일 수밖에 없다. EU 체제의 약화는 반세계화, 보호무역주의 확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美 금리와 中 경제의 연착륙

지난해 12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정책금리를 0.25% 포인트 인상하면서 앞으로 경제여건에 따라 점진적으로 금리를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연준 위원들은 올해와 내년, 2019년에 각 3회 정도 금리가 인상될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에서는 미국 정책금리 수준을 올해 12월 1.38%, 내년 12월 2.13%로 예상한다.

미국의 정책금리는 인상 폭과 속도가 중요하다. 빠르게, 그리고 급격하게 금리가 올라가면 주변국에 미치는 파장이 만만찮다. 당장 우리나라의 경우 시장금리 급등으로 13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가중된다. 미국 정책금리가 오르면 신흥국에서 외국인 투자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부작용을 일으킨다. 이는 외환보유액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경제의 연착륙 여부도 ‘초강력 태풍’이다. 중국은 우리나라의 첫 번째 수출대상국이다. 중국경제가 휘청이면 우리 수출에 막대한 타격을 준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중국 비중은 26.0%(2015년 기준)에 이른다.

중국경제는 3가지 시급한 과제(①과잉설비 산업 구조조정, ②부동산시장 안정, ③기업부채 관리)를 안고 있다. 철강·석탄 등 과잉설비 산업 가동률이 60∼70% 수준으로 하락한 상황에서 한계기업 비중이 늘고, 기업부채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시중 유동성이 부동산으로 유입되면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세다.

중국 정부는 3가지 과제를 해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전문가들은 리스크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본다. 다만 대내외 여건의 불확실성, 적정 수준의 성장세를 유지할 필요성 때문에 리스크가 덩치를 키울 가능성은 여전히 남는다.

‘빅2’의 무역 또는 환율전쟁

미국은 지난해 10월 환율보고서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을 모두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다. 미국은 주요 교역대상국의 환율정책을 3가지 기준(대미 무역흑자, 경상수지 흑자, 환율개입)으로 평가해 심층분석국,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한다. 심층분석국에 이름을 올리면 제재 대상이 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특히 중국에 주목한다.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해 미국과 무역에서 부당한 이익을 챙긴다고 본다. 중국의 미국 수입시장 점유율은 21.5%(2015년 기준)에 이른다. 미국은 2015년 중국과 교역에서 3657억 달러의 적자를 봤다.

트럼프는 중국을 심층분석국(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중국산 제품에 4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미국은 그동안 환율조작국에 보복관세 부과,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한 압박 등 다양한 무역 제재를 가해 왔다.

미국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빅2’(미국과 중국) 사이에 무역전쟁 혹은 환율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두 나라가 통상마찰을 빚으면 우리 경제는 ‘넛 크래커’(호두를 양쪽으로 눌러 까는 기계) 사이에 끼인 호두 신세가 된다.

한은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 특징을 감안할 때 올해 해외요인이 경제 및 금융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 특히 글로벌 저성장과 교역부진 추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불확실성이 겹치는 시나리오를 경계한다. 2015년 명목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대외의존도는 69.9%에 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비하고 준비해야 할까. 역시나 기본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한은은 4차 산업혁명 대비, 노동시장 구조개선, 산업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체질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계소득 확충으로 내수에 활기를 불어넣고, 가계부채 등 위험요인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