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숫자와 수익으로 평가받는 금융지주사 및 은행 최고경영자(CEO)들도 새해 메시지만큼은 사자성어를 선호한다. 내용이 압축적이라 교훈을 담기 좋고, 보수적인 금융권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올해 정유년(丁酉年)에도 한시(漢詩) 백일장을 방불케 하는 메시지들이 쏟아졌다.
사자성어에 가장 애착을 보인 주인공은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다. 김 회장은 1일 KEB하나은행을 비롯한 계열사 임직원 700여명과 함께 서울 북한산 사모바위에 올라 일출을 보며 4개 이상의 사자성어가 담긴 신년사를 내놓았다.
먼저 일념통천(一念通天). 김 회장은 “지난해 외환은행과 성공적 통합을 이뤘다”며 직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노력해 뜻이 하늘과 통했다’고 치하했다. 이어 여리박빙(如履薄氷). 2017년 금융 환경은 ‘얇은 얼음 밟듯, 몹시 위태롭다’고 언급했다. 극복을 위해선 해현경장(解弦更張). ‘거문고의 줄을 다시 매 듯’ 판을 바꾸기 위한 혁신을 강조했다.
김용환 NH농협금융 회장은 시경(詩經)에 나온 연비어약(鳶飛魚躍)을 인용했다. ‘솔개는 하늘을 날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뛴다’는 뜻으로 도약을 강조하는 메시지다. 직원들과 카카오톡으로 서슴없이 소통하는 김 회장은 “농협금융의 자랑스러운 DNA를 정립하자”며 “관행과 형식주의를 버리고 효율적이고 스피디한 조직문화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미국발 금리인상과 1300조원 넘는 가계부채 탓에 정유년은 금융 안정과 리스크 관리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예금보험공사 곽범국 사장은 침과대단(枕戈待旦)의 자세를 강조했다. ‘창을 베고 자면서 아침을 기다린다’는 내용이다. 곽 사장은 “금융시장이 예보를 필요로 하면 언제든지 앞장서자”고 말했다.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은 올해를 지속가능 경영의 원년이라고 명명하며 교자채신(敎子採薪)을 강조했다. 조선·플랜트·철강산업 등의 어려움에 맞서 구조조정을 지원하고 있는 수은에 미래 먹거리 산업 개발이 중요하다며, ‘힘이 들어도 가까운 곳보다 먼 곳의 땔나무를 먼저 캐야 한다’고 밝혔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도 ‘바람을 타고 파도를 헤쳐 나가는’ 승풍파랑(乘風破浪)의 도전 정신을 강조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금융지주사·은행 CEO 새해 사자성어 메시지
입력 2017-01-01 18:48 수정 2017-01-01 2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