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김재천] 외교안보정책 지속성 유지해야

입력 2017-01-01 17:29

지정학적 우범(虞犯) 지대에서 탄생한 대한민국에 외교안보가 쉬었던 적은 없었다. 지난했던 대한민국의 외교안보사에서 2016년 겪었던 시련은 그래도 매우 특별해 보인다. 당분간 도발을 자제하며 실용적 노선을 취할 것이라는 전문가 분석을 비웃기라도 하듯 북한은 설날 연휴 아침 기습적으로 4차 핵실험을 실시했고, 역대급이라는 대북제재 체제가 출범했음에도 9월에는 5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험한 이웃을 두고 있는 동북아에서 우리가 국가 안위를 지켜내며 어엿한 중견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한·미동맹에 기인한 바 크다. 연초부터 불어닥친 도널드 트럼프 돌풍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동맹의 책무를 회수해갈 수도 있다는 우려를 자아냈다. 미국 국내정치 상황으로 인해 우리 외교안보에 큰 리스크가 발생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정작 더 큰 위험은 국내에서 터져 나왔다. 10월부터 불거져 나온 납득하기 어려운 스캔들은 결국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고, 그 와중에 트럼프가 미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대통령은 ‘최고 군통수권자(Commander-in-Chief)’임과 동시에 ‘최고위직 외교관(Chief Diplomat)’이다. 이러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었고, 2017년 외교안보 정책의 입안과 집행은 상당기간 권한대행체제 아래서 이뤄져야 한다. 한국의 외교안보에 적지 않은 손실이 예상되는 이유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으로 발생할 수 있는 외교안보 이익의 손실이 치명적은 아닐 수도 있다. 이달 20일이면 트럼프 행정부가 정식으로 출범하는데, 당분간 정상외교가 가동되지 못하니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다. 하지만 정상외교는 국가 간 이익구조가 합치돼야 일정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 임기 초반 이뤄진 2001년 김대중·부시 정상회담은 신뢰 부족과 북한 및 중국에 대한 인식 차이로 한·미 관계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1972년 닉슨과 마오쩌둥 정상회담으로 미·중 관계가 정상화됐지만 이는 정상회담 전에 양국이 이익 구조와 옛 소련에 대한 인식을 수렴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상이 만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니, 대행체제에서도 대화 채널을 가동해 주요 정책을 조율해야 한다. 동북아의 변덕스러운 지정학적 환경과 북한 위협에 오랜 기간 단련된 한국은 나름 안정적인 외교안보 시스템을 구축했고, 이런 시스템은 대행체제에서도 대부분 기능을 수행할 것이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3개월여 직무정지됐어도 한·미동맹은 정상 가동됐고, 북한 위협은 적절히 억지됐다. 탄핵 후 국가신인도에도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스캔들이 발생한 이유는 대통령이 헌법 테두리 밖에서 행동했기 때문이었고 국가적 망신거리였지만, 스캔들에 대한 대처는 법치에 의거해 민주적으로 질서 있게 진행되고 있고 국제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

2017년 한국의 외교안보 위기는 정치인들이 박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을 ‘탄핵’하려 할 때 발생할 것이다. 대통령의 정치적 사망과 빨라진 대선 시계로 인해 정치적 중립성이 중요한 외교안보 정책이 국내 정치의 인질이 되고 있다. 이미 차기 대통령 후보로 유력한 정치인들이 사드(THAAD) 결정 번복을 시사하고 있다. 일본과 체결한 한·일 정보공유협정(GSOMIA)과 위안부협약도 위태로워 보인다. 물론 박 대통령 잘못도 크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외교안보 정책일수록 보다 적극적으로 국민여론을 수렴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사드, 정보협정, 위안부협약 모두 국가적 합의 도출 과정을 생략하고 속전속결로 진행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통령의 소통 부족과 의사결정 과정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주요 외교 파트너와 체결한 협약을 뒤집는 것은 새해 한국의 외교안보에 최고의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정치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