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이 인적 청산을 요구하며 친박(친박근혜) 핵심 인사들과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인적 청산 카드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돌아선 민심을 돌리기 위한 첫걸음으로 해석된다. 새누리당은 친박계와 비주류 간 내전에 이어 인적 쇄신 문제를 놓고 홍역을 치를 전망이다.
인 비대위원장은 3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자진탈당해야 할 대상을 지목했다.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당대표 등 당을 이끌었거나 박근혜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내며 제 역할을 못한 인사, 4·13총선 과정에서 국민적 비판을 산 인물 등’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인 위원장은 친박계를 향해 “새누리당이 ‘청와대 여의도지부’란 말도 있었다” “(의원들은) 계파 수장이 시키는 대로만 한다” 등 거센 비판을 쏟아냈다.
당 안팎에선 청와대 홍보·정무수석을 지내고 당대표에 오른 이정현 의원,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최경환 의원 등이 거론된다. ‘친박 맏형’ 서청원 의원과 강성 친박으로 분류되는 이장우 조원진 김태흠 의원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했던 김진태 의원과 ‘공천 막말’ 논란을 일으킨 윤상현 의원도 있다.
인 위원장은 특히 서청원 최경환 의원을 겨냥한 듯 “어물쩍 2선 후퇴로는 안 된다”며 자진탈당을 촉구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도 인적 청산 대상에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대상자의) 구체적인 이름은 말씀드리지 않았고 박 대통령도 그 원칙에 포함된다”며 즉답을 피했다. 한 당직자는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내년 대선뿐 아니라 당의 존립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누리당의 중립 성향 의원들은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수도권 한 의원은 “친박 색채를 빼지 못하면 민심을 수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비주류 탈당 후 ‘친박당’ 색채가 강해진 상황에선 어떤 쇄신책도 먹혀들지 않는다는 얘기다.
문제는 친박계의 반발이다. 한 친박 의원은 “당이 뭉쳐야 할 때인데 인적 청산 요구는 당을 깨자는 소리”라고 주장했다. 다른 의원은 “서청원 최경환 의원은 이미 2선 후퇴를 선언했는데 인 위원장의 요구는 지나치다”며 “청산 대상이 누구인지부터 구체적으로 밝혀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앞으로 친박계가 본격적으로 인 위원장 흔들기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개혁보수신당(가칭)은 인 위원장의 인적 쇄신 카드가 벽에 부닥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보수신당의 한 의원은 “이런 인적 청산이 제대로 될 것 같았으면 비주류가 탈당했겠느냐”고 새누리당의 쇄신책을 깎아내렸다.
인 위원장은 ‘반기문 추종자’들도 맹비판했다. 그는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들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귀국 후 탈당할 가능성에 대해 “지금 충청도 도지사를 뽑느냐”며 “그런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했다. 나경원 의원 등 일부 중진도 탈당할 수 있다는 질문엔 “나경원이 중진이냐”고 했다. 이어 “내가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할 때 (나 의원은) 초선이었다”며 “그렇게 따라다니다가 친박, 비박으로 (나뉘게) 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칼 빼든 인명진 “2선후퇴로 어물쩍 안된다”
입력 2016-12-31 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