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포커스] ‘有錢특권’… 가진 자들의 안하무인

입력 2016-12-31 00:00
1979년 7월 하명준(당시 25세) 한국시티즌공업주식회사 이사가 서울 용산구의 한 호텔에서 이 호텔 나이트클럽 호스티스 김모(당시 24세)씨의 아랫배를 담뱃불로 지진 사건이 있었다. 하씨는 김씨에게 구혼했으나 김씨가 거절하자 옷을 벗기고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김씨 배에 자신의 성인 ‘하’자를 새기며 “너를 영원한 애인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하씨의 아버지는 평창전분, 한미시티정밀, 중앙상호신용금고 등 여러 기업을 경영하고 있었다. 이 사건은 재벌 2세의 오만방자한 행태가 국민에게 알려진 첫 사건이었다.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책으로 재벌이 특혜를 누리며 한창 성장하고 있던 때였다.

로열패밀리 갑질의 역사

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금수저들’의 안하무인(眼下無人) 난동 사건은 2016년까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달에만 두 건이 있었다. 두정물산 대표의 아들 임범준(34)씨는 항공기에서,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 장남 장선익(34) 이사는 술집에서 난동을 피우다 경찰에 입건됐다.

비뚤어진 재벌가 자제의 일탈을 보여준 가장 유명한 사건은 SK 재벌가인 최철원(47) 전 M&M 대표의 ‘맷값 폭행’ 사건이다. 최씨는 2010년 SK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탱크로리 기사를 회사 사무실로 불러 야구방망이와 주먹으로 폭행한 뒤 ‘맷값’ 명목으로 2000만원을 줬다. ‘돈이면 다 된다’는 재벌가의 사고방식을 보여준 이 사건은 영화 ‘베테랑’에서 재현됐다.

조현아(42)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2014년 대한항공 여객기에서 승무원의 견과류 서비스 방식을 문제삼아 사무장 등에게 폭언·폭행을 하고 기체를 활주로에서 공항으로 복귀하게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또 재벌 3세 경영인인 대림산업의 이해욱(48) 부회장이 운전기사들에게 상습적으로 폭언·폭행을 일삼았다는 의혹도 지난 3월 터져나왔다.

횡포로 지위 드러내는 사회

한국사회에서 재벌 2세 금수저들의 갑질 행태가 끊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 최환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책 ‘갑질사회’에서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하위 계층을 향한 편견이 증가하고 그들에게 우월감을 표시함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1994년 신준호 롯데햄우유(현 푸르밀) 부회장 외아들 신동학씨의 프라이드 운전자 폭행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신씨는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에서 자신의 그랜저 차 앞에 소형 프라이드 차가 끼어들자 도로변에 있던 벽돌과 화분으로 소형차 운전자를 폭행했다. “건방지게 프라이드가 앞서 간다”는 게 이유였다. 프라이드보다 그랜저가 우월하다고 확인시키려는 비뚤어진 사고방식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약한 공적 권위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법권 등 공적 권력 대신) 재력을 바탕으로 한 사적 권력이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는 사회일수록 재벌가의 갑질 행태가 흔히 일어난다”고 말했다. 사회학자 엄기호씨는 책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에서 “돈이 있는 한 누군가를 모욕할 수 있게 되면서 한국사회는 거대한 모욕의 피라미드가 됐다”며 “소비자본주의는 모욕의 피라미드의 근본 원인”이라고 요약했다.

공정한 처벌이 우선

전문가들은 공정한 처벌이 금수저들의 갑질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봤다. 최철원 ‘맷값 폭행’ 사건을 다룬 LA타임스는 2010년 12월 1일자 기사에서 이 사건을 이렇게 보도했다.

“한국사회에는 6·25전쟁 이후 경제 성장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다. 재벌이 경제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유로 재벌을 엄격하게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벌들의 폭행이 자주 발생하는 것이다.”

김지호 경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금수저든 은수저든 흙수저든 자신의 일탈행위가 정당하게 처벌 받는 시스템이 작동한다면 특권의식은 발휘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범죄억제이론에 따르면 처벌이 확실하고, 처벌 강도가 강하고, 처벌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질 때 범죄나 일탈행위의 유혹이 억제된다”며 재벌에 대한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윤성민 이가현 기자 woody@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