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對러 보복… 외교관 35명 추방·공관 2곳 폐쇄

입력 2016-12-30 18:32 수정 2016-12-31 00:27
워싱턴DC 주미 러시아대사관에서 29일(현지시간) 보안요원이 차량을 세운 뒤 폭발물 설치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미 정부가 이날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을 공식화하면서 러시아 외교관 35명을 추방한다고 발표한 뒤 대사관에 대한 경비가 한층 강화됐다. 신화뉴시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 자국 내 러시아 외교관 추방을 비롯해 전례 없이 강경한 보복 조치를 단행했다. 러시아가 도널드 트럼프를 당선시키려고 민주당을 해킹한 것에 대한 보복이자 트럼프에 대한 공격이다. 러시아는 트럼프 취임 때까지 맞대응을 자제하기로 했다.

백악관과 미 재무부는 29일(현지시간) 미국에 있는 러시아 외교관 35명을 추방하고 러시아 소유 공관시설 2곳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또 러시아군 총정보국(GRU)과 러시아연방보안국(FSB) 등 5개 기관, GRU 고위직을 포함한 개인 6명에 대해 경제제재 조치를 취했다. 추방될 외교관 35명은 스파이로 규정했다. 백악관은 “러시아의 악의적인 사이버 행동은 대선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였고, 미국의 민주제도와 선거 절차의 신뢰성을 저해했다”며 “이는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전날 미 연방수사국(FBI)과 국토안보부는 지난 7월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힐러리 클린턴 캠프 선거대책본부장 존 포데스타의 이메일이 해킹돼 공개된 것이 러시아 해킹단체 ‘팬시 베어’와 ‘코지 베어’ 소행이라고 발표했다. 배후로는 GRU와 FSB를 지목했다.

이번 조치는 러시아의 대선 개입을 인정하지 않는 트럼프를 향한 오바마의 일격이기도 하다. 오바마는 트럼프를 겨냥해 “모든 미국인은 러시아의 행위에 경악해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트럼프는 “이 나라는 더 크고 좋은 사안으로 넘어가야 할 때”라는 성명을 내놨다. 다만 “실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업데이트하기 위해 다음 주 정보 당국 수장들을 만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러시아 성향을 드러낸 트럼프의 난감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공화당은 “너무 늦었지만 적절한 조치”라며 트럼프와 다른 입장을 내놨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도 “진작 그렇게 했어야 할 일로, 지난 8년간 실패를 거듭한 대(對)러시아 정책을 마무리 짓는 적절한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오바마는 제재 방법과 수위, 시점을 놓고 보좌진과 수개월간 토론했다. 대선 전에 발표하면 러시아의 보복으로 선거에 차질이 생길까봐 발표를 미뤘지만 막상 선거에서 민주당이 패한 탓에 발표를 늦춘 게 실수였다는 평가도 나왔다. 오바마는 “대응 조치 중 일부는 공개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비공개 대응 중 하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겨냥한 모종의 조치가 분명하다고 NYT는 전했다.

러시아는 당초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으로 맞서려 했으나 맞대응을 보류하기로 했다. 트럼프 정권에 기대를 걸겠다는 취지다. 30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 직원 31명과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미국 총영사관 직원 4명을 추방할 것을 푸틴에게 제안했다.

미국 외교관들이 쓰던 모스크바 내 별장과 창고에 대한 사용 금지도 함께 건의했다. 라브로프는 “상호주의는 외교와 국제관계상의 법칙”이라고 설명했다. CNN은 러시아가 모스크바의 영미 국제학교를 폐쇄토록 명령했다고 보도했지만 러시아 외무부는 이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푸틴이 제동을 걸었다. 그는 이날 성명을 내고 “미국 외교관들을 추방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과 가족들이 신년 휴일 동안 평소처럼 별장 시설을 이용하는 것을 막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만 푸틴은 미국의 조치에 대해 “양국 관계를 한층 악화시키고 손상시키기 위한 도발”이라며 러시아가 미국의 제재에 대응할 권리는 있다고 덧붙였다.

천지우 전수민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