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정치권에서는 20대 국회의원 총선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등 초대형 사건들이 벌어졌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선택과 결단의 순간을 강요받았다. 최선책이라고 봤지만 반대의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정치인의 결단은 한국정치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국민의당 박지원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는 생물’이라는 격언을 자주 인용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지난 4월 20대 총선에서 단일화 논쟁을 벌였다. 김종인 당시 비대위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 민주당 총선 후보들은 “야권 단일 후보를 내야 한다”고 국민의당을 압박했다. 김한길 전 공동선거대책위원장 등 국민의당 내부에서조차 호응이 있었다. 새누리당이 개헌 가능한 의석(200석)을 확보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았다. 안철수 당시 공동대표는 고립됐다. 당시 야권에는 패배주의가 팽배해 있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여소야대, 민주당은 원내 1당으로 약진했다. 국민의당도 원내교섭단체라는 목표를 이뤘다. 안 전 대표는 총선이 끝난 이후 “내 결단이 맞았다”고 했다.
야권의 총선 패배주의는 누군가의 ‘불우한’ 선택으로 이어졌다. 손학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은 총선 전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러브콜을 동시에 받았다. 손 전 고문이 수도권 지역에 갖고 있는 영향력 때문이다. ‘몸값’은 높아져 있었지만 손 전 고문은 나서지 않았다. 야권의 수도권 승리를 자신할 수 없었다는 설이 유력했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30일 “손 전 고문이 수도권 승리를 견인했다면 그의 위상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라고 촌평했다.
국민의당 비례대표 10번 순번을 제안받았으나 고사한 인사들은 총선 뒤 망연자실했다. 당시 누구도 국민의당이 비례대표를 13석이나 확보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4성 장군’ 출신 이성출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비례 10번 제안을 거부한 뒤 김중로 의원을 대신 추천했다고 한다. 김 의원은 비례 10번으로 당선돼 ‘국정감사 스타’로 떠올랐다.
야권은 이달 초 탄핵 표결 시기를 놓고도 ‘최선의 날짜’에 대한 격론을 벌였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2일 표결을 주장했다. 이들은 2일 표결을 강행해도 탄핵안이 가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새누리당 비주류는 박 대통령이 내놓은 ‘질서있는 퇴진론’에 동요하고 있었다.
국민의당 박지원 전 비대위원장은 “2일은 부결 가능성이 높다. 촛불 민심으로 여권 비주류를 압박해 9일 표결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탄핵 반대 세력으로 지목돼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박 전 위원장이 버틴 끝에 탄핵안은 9일 본회의에서 234명의 찬성표로 통과됐다. 한 민주당 의원은 “지금 생각해보면 9일 표결이 가장 적절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최순실 사태 초반 박근혜정부를 엄호했던 여권 의원들은 반성에 가까운 ‘자기 고백’을 하고 있다. 개혁보수신당(가칭) 이은재 의원은 지난 28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박근혜 도그마’에 빠져 있었다”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벙어리처럼 침묵해 대단히 죄송하다”고 말했다.
원로들은 정치인이 정파적 입장에 매몰될 경우 민심과 역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정치인들이 정파적 입장과 손익에 너무 빠져선 안 된다. 국민을 바라보고 국가를 위한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
[기획] 총선·최순실 사태·대통령 탄핵…정치인들 '선택과 결단' 피말린 2016년
입력 2016-12-30 17:33 수정 2016-12-31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