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16년, 이 나라의 문제를 낱낱이 알려준 해였다

입력 2016-12-30 17:39
2016년을 돌아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침체된 경제는 활로를 찾지 못해 저성장이 뉴노멀로 자리 잡았다. 팍팍해진 삶에 청년은 ‘헬조선’을 말했고 중·장년은 노후 공포를 절감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거의 손에 쥐었는데 국제 정세는 불확실성을 누적해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비선실세가 국정을 농단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국민은 대통령의 배신에 충격을 받았고 또 분노했다. 2차대전 이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문턱에 다가선 유일한 나라, 원조를 받다가 원조를 해주게 된 나라, 세계에서 7번째로 ‘30-50 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인구 5000만명)에 가입할 나라란 식의 수사(修辭)는 민망할 정도로 퇴색했다. 포장이 벗겨지니 경제와 안보, 정치와 사회, 심지어 국가 리더십까지 온통 부실한 ‘위기의 한국’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민낯을 우리는 뇌리에 똑똑히 새겨둬야 한다.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려면 발전을 가로막는 문제를 고쳐야 하고, 문제를 고치기 위해선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야 한다. 2016년은 우리에게 이 나라의 문제가 무엇인지 낱낱이 알려준 고마운 해였다.

모든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토록 총체적인 위기에 놓였다는 건 그만큼 큰 기회를 만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찔하지 않은가. 국정농단 사태가 없었다면 박근혜정권은 그냥 그렇게 임기를 마쳤을 것이다. 권력에 기생하는 세력과 부조리한 정경유착도 노출되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 개조를 요구하는 국민의 통일된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을 테니 내년 대통령 선거는 5년 전과 다르지 않은 구호로 똑같은 진영논리에 파묻혀 치러졌을 것이다. 문제를 되풀이하지 않을 기회, 뜯어고쳐 새롭게 시작할 기회가 왔다. 우리는 희망을 가져도 좋다. 촛불집회의 질서정연함은 이 기회를 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성숙한 시민은 아무 나라나 가질 수 있는 자산이 아니다. 정치와 권력은 결국 시민의 수준을 따라오게 돼 있다. 2016년에 드러난 한국의 민낯을 똑똑히 기억하며 변혁을 주문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잠들지 않는 한 이 위기는 기회가 될 것이다.

민주화 이후 30년간 정치는 냉소의 대상이었다. 국민을 위한다는 말을 곧이듣는 국민이 많지 않다. 경제의 걸림돌이자 사회통합의 장애요인이 됐다. 국가적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동력은 국민에게서 나오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역할은 정치의 몫이다. 1987년 민주화는 미완의 변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문민정부 출범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건 정치의 실패에 원인이 있었다. 이제 해나가야 할 국가 개조 작업은 결코 미완에 머물러선 안 되는 일이다. 이 나라의 향후 30년, 50년이 2016년을 토대로 한 2017년의 변화에 달려 있다. 정치권은 그 역사적 책무를 엄중하게 인식해야 한다. 정치인들 하는 일이 다 그렇고 그렇다는 냉소로부터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