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 지원서 빠진 ‘3∼4단계’ 구제 길 열렸다

입력 2016-12-30 00:03



국회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구제계정’(피해구제기금) 합의로 그동안 지원 사각지대에 놓였던 3∼4단계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수 있게 됐다.

정부는 그동안 1∼2단계 피해자(폐섬유화 환자)에게만 의료비와 장례비, 생활비 등을 지원해 왔다. 그러나 천식 등 폐섬유화 이외 호흡기질환을 호소하는 피해자(3∼4단계)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었다. 이 탓에 가해 기업을 상대로 민사소송도 낼 수 없었다. 피해자냐 아니냐의 경계선상에 놓여 있었던 이들의 피해 신고는 한국환경기술원 접수 기준으로 지난 25일까지 613건(58.43%)에 달한다.

하지만 2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최대 2000억원 규모의 구제기금 마련 방안에 합의함에 따라 이들도 1∼2단계 피해자와 비슷한 지원을 받게 될 전망이다.

기업별 분담금은 가습기살균제 판매량을 기본으로 살균제 원료물질의 독성값, 이와 연계된 피해 현황에 2.5배 가중치를 더해 산정한다. 이를 적용하면 가습기살균제를 가장 많이 판매한 옥시레킷벤키저(옥시)의 분담금이 최대 규모가 된다. 국회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특위에 따르면 옥시는 2000∼2014년 438만개의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했다. 전체 판매량(711만개)의 62%다.

여기에 독성값이 2500(1보다 높으면 위험)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사용한 옥시와 롯데마트 등의 분담금 비율은 더 높아지게 된다. 반면 독성값이 9.41인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CMIT)을 원료로 제품을 만든 애경, 이마트 등의 분담금은 낮아지는 구조다.

다만 독성값이 1만500으로 가장 높은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을 원료로 사용한 세퓨는 15명의 사망자를 냈지만 한 푼의 분담금도 내지 않는다. 기업이 도산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조성된 분담금은 1250억원, 여기에 기부금 등을 더해 최대 2000억원의 피해구제기금이 마련된다.

그러나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적용되지 못했다. 야권은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제정안’에 ‘가해 기업이 손해액의 10∼20배를 배상한다’는 문구를 삽입하려 했지만 여당의 반대로 합의에 실패했다. 대신 ‘배상액 산정 시 가습기살균제 결함으로 인한 손해 및 피해 구제 노력 정도 등을 고려해 충분히 배상해야 한다’는 문구를 넣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구제기금을 환경부 회계상 ‘계정’ 형식으로 마련한 데 대한 논란의 소지도 있다. 당초 야권은 기금 형태로 추진했으나 기획재정부가 ‘국가재정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반대했다. 특위 위원장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정부는 공식 사과는 물론 기금 조성에도 반대하는 등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환노위는 이날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법안은 정부가 피해자·유족에게 요양급여와 요양생활수당, 장의비, 간병비 등을 지급토록 하고 있다. 환경부에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위원회’와 ‘피해지원센터’ 설립도 포함됐다. 국회 법사위·본회의를 통과하면 시행된다.

피해자들은 지난달 세퓨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처음 승소했다. 법원은 사망 피해자 부모에게 1억원, 상해 피해자에게 3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피해자 및 유족 일부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은 패소해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옥시는 지난 7월 영유아 및 어린이 사망에 대해 10억원, 가습기살균제 사망 피해자에 대해 1억5000만원 수준의 배상 기준을 제시했지만 피해자들은 “유럽보다 배상 수준이 낮다”며 거부했다.

글=최승욱 정건희 기자 applesu@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