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AI)가 유행하면서 닭과 오리가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AI에 감염되거나 감염 농가 인근의 가금류는 마대자루에 넣어져 생매장당하기도 하고 이산화탄소 가스로 고통스럽게 질식사한다. 이에 동물보호단체에서는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급박한 살처분 현장에서 동물의 ‘웰다잉 복지’는 쉽게 외면된다.
AI 살처분 공식 지침에 따르면 감염된 동물은 전기충격이나 약물, 가스 등을 이용해 안락사를 먼저 시키고 매장해야 한다. 이는 동물보호법 제10조에서도 명시하고 있는 사항이다. 안락사에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이산화탄소 가스다.
하지만 이산화탄소가 동물을 고통스럽게 죽인다는 지적이 계속되면서 올 5월 국립축산과학원은 유럽 등 축산선진국에서 쓰는 질소가스 거품을 개발했다. 질소가스 거품은 고통을 느끼기 전에 폐사 전 무산소증으로 기절하게 돼 고통을 최소화한다. 동물복지에 더 적합한 방식인 셈이다.
그러나 이번 대규모 AI 살처분 현장에서 질소가스 거품이 사용된 지역은 미미했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우리나라에서도 동물들의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질소가스 거품이 개발됐지만 자체 모니터링한 결과 전국 지자체의 5% 남짓만 질소가스 거품을 도입했다”며 “국제수역사무국도 질소가스 거품 사용을 권고하고 있기 때문에 동물복지를 생각한다면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동물보호단체는 이산화탄소 가스가 동물복지를 해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가축예방법 시행규칙은 포괄적으로 가스라고 명시하고 있어 이산화탄소를 쓴다 해도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생매장 살처분 논란에 대해서도 농식품부는 “현장에서 지침을 어기고 산 채로 매장하는 사례가 공식적으로 파악된 것은 없다”고 부인했다. 이에 동물단체는 “현장에 방역 담당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농식품부는 현장 실태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농식품부와 동물보호단체가 AI 살처분 방식을 놓고 승강이를 벌이는 것은 벌써 10년 넘게 되풀이되고 있다. 잔인한 살처분 문제가 매년 반복되는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부실한 예방책’을 꼽았다. 이 대표는 “죽이는 게 능사가 아니다. 살처분은 실패한 정책”이라며 “동물들의 면역력 강화, 건강 증진을 통해 살처분돼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아예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환 동물자유연대 선임이사도 “근본적인 대책은 백신 접종, 공장식 사육 제한, 철새 도래지 인근 농장허가 금지 등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오상집 강원대 동물자원과학부 교수는 “철새들이 축사 주변에 접근하지 않도록 주변 지역의 사료, 먹이, 풀 등을 말끔히 제거하는 등 환경 관리를 철저히 하고, 축사 간 이동이 있을 때는 반드시 의류나 신발 등을 소독하도록 예방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기획] “닭·오리 살처분 너무 야만적”… 10년째 생매장 되풀이
입력 2016-12-30 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