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울 것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마태복음 19장 24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대다수 신학자들은 이를 부의 축적에 대한 전면적 부정이 아니라 부에 현혹돼 그릇된 길에 들어서는 것을 경계하라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요즘 이 말씀을 곱씹게 만드는 곳이 생겼습니다. 바로 차병원그룹입니다. 최근 차병원그룹 회장 일가가 불법 제대혈 시술을 받은 것으로 확인돼 보건 당국이 이 병원의 ‘국가 지정 기증제대혈은행’ 지위를 박탈하기로 했습니다. 이 지위 덕분에 차병원이 지난해 이후 정부로부터 받은 5억원도 환수하기로 했죠. 앞서 그룹 산하의 차움의원이 최순실씨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 대리처방을 해주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 대해 줄기세포 시술을 해줬다는 등의 의혹도 받고 있습니다.
차광렬 차병원그룹 총괄회장의 할아버지는 장로회신학대와 총신대의 전신인 평양신학교의 4회 졸업생(1911년 졸)인 차형준 목사입니다. 초기 한국교회의 역군(役軍) 중 한명인 그는 1912년 목사 안수를 받고 평안북도 강계 용천 선천 정주 등에서 사역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18년 ‘신학지남’ 창간호에 설교문이 실릴 정도로 활발히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신학지남은 호주인 선교사 엥겔(Engel)이 만든 연구지입니다. 일제강점기 신학서적이 부족하던 당시 목회자와 신학생들에게 목회에 필요한 자료와 신학지식을 전달했던 통로로 평가받습니다.
차 목사의 다섯 번째 아들인 경섭씨는 세브란스의전 졸업 후 차산부인과병원, 이어 차병원을 설립하고 큰 성과를 이룹니다. 차병원은 병원 재벌로 손꼽힐 정도로 부를 쌓았습니다. 그러나 차 목사는 이 모습을 보지 못했으며 만주지역의 선교사로, 시골 작은 교회의 목사로 사역하며 평생 부유하지 않게 살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성경은 부에 따른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신8:18),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시37:16)
최근 들리는 어두운 소식들은 차 목사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신앙을 지키고 있는지에 의문을 품게 합니다. 부와 재물에 취해 선조들이 쌓아온 믿음의 유산에 누를 끼치고 있는 건 아닌지요.
옥성득(미국 캘리포니아대 한국기독교학) 부교수가 지난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의 일부를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우리는 신앙을 버린 한 가문의 어긋난 길을 목도하고 있다. 신앙은 있었으나 가난했던 차 목사와 돈은 많으나 신앙은 없는 그의 손자. 이것이 한국교회가 걸어온 길의 궤적인가. 차가운 겨울 공기처럼 가슴이 시리다.”
글=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삽화=이영은 기자
[미션 톡!] 신앙 등진 어느 의료 명문가의 어긋난 길
입력 2016-12-29 2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