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의 종교개혁 500년] 광장은 마련되었다

입력 2016-12-30 20:39

요즘 TV드라마가 재미없어졌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실이 막장드라마보다 더 막장 같기 때문이라 한다. 드라마 작가들의 고충이 꽤 클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드라마틱한 현실을 능가하는 이야기를 쓰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두 달간 대한민국의 현실은 진짜 막장드라마보다 더 막장 같았다. 국민들의 심정은 참담하고 부끄러웠다.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된 새로운 사건들이 계속 등장하니 혼란스럽다. 막장의 끝은 어디일까. 최근엔 박근혜정부와 청와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도한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추가됐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걸로 알려진 고은 시인은 “내 이름이 포함돼 영광”이라고 했다. 그리고 현 정부를 “구역질나는 정부”라고 비난했다.

문화융성을 내건 정부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문화예술계를 통제해 왔다니 정말 어이가 없다. 이 블랙리스트가 어찌 문화계에만 있었겠는가. 언론계에도 있지 않았을까 의심이 간다. 정부가 집요하게 언론을 길들이려 했다는 건 이제 공지의 사실이 됐다. 정윤회 문건 파동 당시 언론이 제 역할을 했더라면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민의 눈과 귀를 막아 버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청교도혁명 이후 영국의 계관시인 존 밀턴은 1644년 11월 24일에 ‘아레오파지티카’라는 책을 썼다. 부제는 ‘검열을 받지 않는 출판의 자유를 위해 영국 의회에서 행한 존 밀턴의 연설’이었다. 의회 연설 형식으로 쓴 이 책에서 그는 검열제도를 반대하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다. 표현의 자유는 신앙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전제로 한다. “우리가 좋은 책 하나를 파괴하는 것은 이성(理性) 그 자체를 죽이는 일이고, 이는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죽이는 것이다.”

생각과 표현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다. 권력이 생각과 표현을 통제해 똑같이 만들려 한다면, 그 권력은 파시즘이다. 이 정부가 그렇게도 혐오하는 북한 김정은 독재와 다를 바가 없고 북한을 추종하는 ‘종북’세력과 틀릴 게 없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문화의 시대엔 무엇보다 자유와 독창성이 중요하다. 한 사람의 천재가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세상이 됐다. 그런데 천재가 나오기 위해선 자유라는 토양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뛰어난 천재의 개성은 자유라는 양분 없이는 생겨날 수 없기 때문이다. 천재가 사회에 기여하는 바를 생각한다면 사회 전체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자유는 절실히 필요하다. 천재의 독창성은 인간사회에서 너무나도 소중한 자양분이다. 검열과 블랙리스트는 천재가 태어날 싹을 죽이는 독약이다. 그래서 자유주의의 시조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어떤 생각을 억압하는 일은 현 세대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인류까지 강도질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중세 로마 교황청의 검열과 이단 심문은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다. 태양중심설을 주장하다 조르다노 브루노는 화형을 당했다.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자기 주장을 철회하고 나서야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어쩌면 로마 교황청의 검열이 성공했더라면, 루터의 종교개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종교개혁 이전에 이미 인문주의운동을 통해 다양한 생각이 표출됐다. 대표적인 경우가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다. 그는 ‘우신예찬’이란 작품을 통해 풍자와 익살을 담아 당시 로마 가톨릭의 부패상을 고발했다. 루터도 에라스무스의 영향을 받았다. 루터가 종교개혁의 횃불을 들어올리자 가톨릭교회는 에라스무스를 이렇게 비난했다. “에라스무스가 알을 낳고 루터가 부화시켰다.”

종교개혁은 양심에 따른 신앙을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하는 데에서 비롯했다.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새해를 앞두고 다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절실하게 갈구한다. 중세도 아닌, 이 시대에 이런 갈망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역사의 퇴행이다.

지난 두 달 동안 시민들은 ‘광장’으로 나섰다. 그 광장에 서서 그들은 너무도 조화롭게 외쳤다. 더 이상 역사를 거꾸로 돌리지 말라고, 부패하고 낡은 것들을 끊어내 나라의 기틀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말이다. 민주공화국의 주인으로서, 우리가 지켜야 할 국가적 가치가 어떤 것인지 이제 진지하게 토의할 때가 됐다.

이동희<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