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생했다는 죄책감에…” 동원 인력 트라우마 심각

입력 2016-12-29 18:25
“조류인플루엔자(AI) 살처분 현장 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입니다. 인체 감염 우려가 있는 데다 살아있는 가축을 강제로 죽이는 작업에 어떤 사람이 선뜻 나서겠습니까?”

고병원성 AI가 창궐하면서 살처분 작업자와 방역 당국 관계자들의 피로가 가중되고 있다.

29일 방역 당국과 방역업체 등에 따르면 살처분 작업자 중 일용직 근로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살아있는 닭과 오리를 질식사시키는 ‘기피 작업’에 투입돼 14만∼15만원 정도의 일당을 받는다. 웃돈을 줘도 살처분 할 인력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살처분 전문업체 A이사(47)는 “시름에 빠진 농장주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어 가장 힘들다”며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작업이 불가능할 정도로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 노동자들을 투입하고 있다. 방학을 맞은 대학생도 용돈 벌이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지역 보건소에서 안전교육을 받은 후 현장에 투입된다. 살처분은 저장고에 이산화탄소 등의 가스를 주입한 후 미생물과 톱밥 등을 함께 매립하는 방식이 주로 사용된다. 6개월 정도 지나 사체분해가 완료되면 검사를 거쳐 매몰지 복원 작업을 한다.

한파 속에서 24시간 방역활동에 투입되는 공무원들도 체력이 바닥나고 있다. 급기야 소독 시설에 근무했던 경북 성주군청 공무원 정모(40·9급)씨가 지난 27일 자신의 원룸에서 숨진 채 발견돼 과로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부서 막내인 정씨는 AI 방역 업무에다 연말 서류 작업까지 겹쳐 지난달엔 42시간, 이달에만 45시간 초과근무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살처분 자원봉사에 참여한 충북도청 공무원 B씨(49·여)는 “살아있는 닭이 죽어가는 모습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며 “살생했다는 죄책감이 들어 당분간 닭고기를 먹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살처분에 동원된 인력을 위한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전에 인체감염에 대한 교육과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을 수 있다는 점도 고지해야 한다.

김필봉(49) 충북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 부센터장은 “작업 완료 후 수십 년이 지나서도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다”며 “수면 장애나 불안 증세 등이 나타나면 전문가와 상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주·성주=홍성헌 김재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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