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이제 학생부로 간다] 기피 학교가 전학오고 싶은 학교로… ‘안면고의 기적’

입력 2016-12-29 19:15
충남 태안군 안면고 과학교사 임우철씨가 ‘자연보호와 개발의 조화를 위한 숲 개발’을 주제로 학생 주도형 수업을 하고 있다.
안면고 학생 2명이 제작한 신문으로 학생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 신문 이름을 지었다.
다양한 수업과 교내 활동에서 만들어진 결과물들이 안면고 복도에 전시돼 있다.
교장실 문이 열렸다. 단정한 정장 차림의 중년 여성이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밀었다. 학교를 소개하던 교장이 곤란한 듯 미소를 지었다. 옆에 앉아 있던 교사가 "아이고 어머님"이라며 다른 데로 안내했다. 교장은 "자녀 전학을 위해 면담 신청한 어머님이 오늘만 두 분이네요. 잠깐만요"라며 일어섰다. 지난 23일 찾은 안면고등학교는 충남 태안군 안면읍의 전교생 200명 남짓의 공립학교다. 올가을 전근 왔다는 교감은 "이런 낙후지역 학교에 전학 요청이 많은 건 드문 일입니다. 이곳도 얼마 전까지 기피 학교였죠. 학교가 좋아지면 어머님들이 먼저 아시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학교가 바뀌면 아이들도 바뀐다

많은 낙후지역 학교들은 악순환에 빠져 있다. 조손·결손가정 비율이 높다. 부모가 타지로 나가 조부모 밑에서 돌봄을 받지 못해 지각·결석이 잦다. 공부는 뒷전, 다수 학생은 유흥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 학교도 비슷했다. 아이들에게 수업 시간은 수면 보충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밤늦게 놀다 늦게 일어나면 점심 먹고 등교하거나 아예 나오지 않았다. 학급마다 한두 명은 문신을 했고 학교폭력도 잦았다. 부근 중학교 학부모에겐 ‘답 없는’ 학교였다. 공부시키려면 다른 지역 고교로 나가야만 했다.

이 학교가 달라진 건 2012∼2013년 무렵이었다. 교장을 중심으로 교사들이 수업 방식부터 바꿨다.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은 엎드려 자는 아이들에겐 무용지물이었다. 끊임없이 체험하고 표현하게 했다. 태안지역 환경 지킴이 활동이나 꽃동네에 봉사를 보내 소감문을 받았다.

2학년 성진이(가명)의 올가을 꽃동네 봉사활동 보고서는 참회록에 가까웠다.

“누구나 봉사할 수 있다. ○○씨(뇌성마비 장애인)도 봉사한다. 내가 봉사 못 한다는 건 거짓이다. 누군가의 휠체어라도 밀어 다리가 돼 줄 수 있다. 참으로 부끄럽고 나 자신에게 화난다. (중략) 눈물이 날 정도로 불쌍했다. 몸이 성치 않다는 이유로 버리는 건 죄악이다. 그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담임교사는 아이의 내적 변화를 읽었다. 성진이 부모님 모두 지병이 있었고 생계를 할머니에게 의존했다. 할머니와 관계가 틀어지며 생활이 궁핍해졌다. 영리한 아이였지만 공부와 담을 쌓고 방황했다. 꽃동네 봉사 이후 성진이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성적은 불과 몇 달 새 중위권에서 상위권으로 뛰었다. 펀드매니저라는 꿈도 다시 꾸기 시작했다.

진흙에서 핀 연꽃들

성진이 담임교사는 “진흙에서 꽃망울을 피우고 있는 아이들은 성진이 말고도 많다”고 했다. 이런 내적 변화는 학교생활기록부에 담긴다. 교사들은 학생부를 아이들을 이끄는 핵심 도구로 활용했다. 다양한 활동을 유도하고 축적된 생생한 내용을 훌륭한 스펙으로 만들어줬다. 교사들은 외부에서 강사를 초빙하는 등 아이들에게 변화의 계기를 하나라도 더 만들어주려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학생부 위주인 대입 수시모집이 빠르게 확대되는 추세와 맞물리면서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평판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성공 사례가 나타나자 후배들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낙후지역 학교라는 약점은 강점이 됐다. 교사 대다수가 학교 바로 옆에 있는 관사에 산다. 퇴근 없이 가정에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 훈육이 가능했다. 입시 위주 교육을 원하는 치맛바람이 없다는 점도 교사들의 부담을 덜어줬다. 이 학교 교직원 흡연율은 0%다. 교직원부터 담배를 끊고 아이들을 다잡았다.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아이들을 잡아끌었다. 이 학교 교사들이 만들고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교육부의 올해 전국 100대 교육과정 사업 평가에서 최우수 프로그램으로 선정됐다.

학업중단 학생 비율은 2013년 8.3%로 전국 평균의 9배가량이었지만 2014년 5.66%, 2015년 5.34%로 하락하다 올해는 2.36%로 뚝 떨어졌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2013년 16건, 2014·2015년 4건, 올해 1건 열렸다. 과거엔 폭력 양상이 심각했지만 올해 1건은 언어폭력으로 비교적 경미했다. 수도권 대학 진학 인원은 2014년 8명에서 지난해 23명으로 3배나 많아졌다. 올해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3학년 전체가 60여명인데 낙후지역 학교로서는 수도권 진학률이 상당히 높다. 지난해에는 경희대 장학생이 나왔고, 올해는 고려대 합격을 눈앞에 둔 학생도 있다.

태안=글·사진 이도경 기자,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