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사역 ‘우유 목사’ 한 겨울에 더 바빠요

입력 2016-12-29 21:00
호용한 서울 옥수중앙교회 목사(왼쪽)가 28일 서울 금호동 달동네의 윤영분(77·지체장애 1급)씨 가정을 방문해 생필품을 전달한 뒤 윤씨 손을 잡고 기도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달동네 골목은 좁고 가팔랐다. 비탈길에 자리 잡은 녹슨 철문들은 12월 동장군의 거센 입김에 어긋난 모서리가 서로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뱉어냈다. 수온주가 영하 7도를 가리키던 28일, 기자와 함께 골목 곳곳을 지나던 호용한(59) 옥수중앙교회 목사는 “최근 4∼5년 사이 재개발로 금호동 옥수동에 고층아파트 단지가 눈에 띄게 늘었지만 여긴 여전히 달동네”라고 하얀 입김을 뿜어냈다. 하나같이 지어진 지 40∼50년이 지난 집들이라는 말이었다.

호 목사는 자기 집 드나들 듯 좁은 골목을 익숙하게 돌아다녔다. 그가 도착한 곳엔 두 평 남짓한 방이 있는 ‘쪽집’이었다. 백발의 노인이 누워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목 수술 도중 발생한 의료사고로 24년째 몸을 일으키지 못하게 된 윤영분(77·지체장애 1급)씨였다.

“할머니 저 누군지 아시겠어요. 지난번에 와서 기도해드렸는데.” 반갑게 건넨 호 목사의 인사에 예상 밖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몰라! 내 나이 칠십 일곱인데 할머니는 무슨. 나 아줌마야!”

호 목사는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윤씨 손을 붙잡았다. “아이고 제가 잘못했네요. 칠십 일곱이면 청춘이죠 뭐. 그나저나 우리 아주머니 얼굴도 고우셔, 피부도 팽팽하시고. 우리 어머니 칠십 일곱일 땐 주름살이 엄청 많았었거든요. 여든 둘에 돌아가셨는데 요즘 들어 참 보고 싶네.” 호 목사의 너스레에 윤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소녀 같은 미소를 지으며 호 목사 손을 꼭 잡았다.

호 목사는 본명보다 별명이 더 유명한 사람이다. 홀몸 노인들을 위한 우유배달 사역을 14년째 이어오며 얻은 이름이 ‘우유 목사.’ 어려운 이웃들을 볼 때마다 눈시울을 붉힌다고 해서 ‘울보 목사’란 별명도 있다. 그의 이름은 몰라도 별명 모르는 사람은 이 동네엔 드물다. 이런 별명에 대해서도 호 목사는 “과분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나님의 지상명령엔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교회가 첫 번째 명령에 너무 열심을 내느라 두 번째 명령에 점점 무관심해졌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어요.”

교회는 ‘사랑의 쌀 나눔’ ‘저소득 어르신 장학사업’ 등을 시작으로 2003년부턴 홀몸 노인들의 영양을 챙기고 매일 안부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우유배달 사역을 펼치고 있다. 14년 전 100가정으로 시작한 우유배달은 동참하는 교회와 성도, 기업들의 후원으로 이제 1000여 가정으로 확대됐다. 호 목사는 “전날 배달한 우유가 남으면 우유배달원들이 교회로 연락을 주는데 그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다”며 “매년 20여통의 전화가 오는데 춥고 기력이 쇠해지는 12월부터 2월 사이엔 더욱 긴장하게 된다”고 귀띔했다.

최근엔 지역 내 기초수급 장애인 20여 가정에 생필품과 음식을 전달하고, 2개월마다 3명씩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사랑의 틀니’ 사역도 시작했다. 2년여 동안 고사해왔던 옥수중앙교회 사역에 관한 책도 출간됐다. 책 이야기에 호 목사는 “유별난 이야기도 아니고 유별나서도 안 될 이야기”라며 거듭 염려를 전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함께해 준,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할 줄 동역자들에 대한 이야길 남겼다.

“우리 교회야 동네일이니 그렇다손 쳐도 아무 관계없는 이 곳 주민을 위해 착한 사마리아인이 돼준 분들은 더 귀할 수밖에 없죠.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틈 사이에 심은 꽃모종이 이만큼 향기를 낸 것처럼 앞으로도 위로와 희망의 꽃향기가 더 널리 퍼져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글=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