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흑백의 대비가 선명한 시간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겨울밤의 그 길고 긴 끝자락을 어린 시절의 나는 한 번도 분명히 목격한 적이 없다. 눈을 뜨자마자 성에로 얼어붙은 유리창으로 달려가 입김을 불어 닦아내며 창밖을 내다보던 아침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창문 밖 세상이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 전혀 다른 곳으로 변해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어제 보았던 그저 그렇기만 한 것들, 보고도 보지 않으려 한 것들, 들려도 듣지 않으려 한 것들, 느껴도 느끼지 않으려 한 것들이 하얗고 맑은 모습으로 새롭게 빛나고 있기를 바랐다.
한 해의 끝은 왜 겨울인가. 일 년을 주기로 순환하는 농사의 과정과 순서를 기록할 필요로 달력이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한 해의 첫날인 1월 1일이 겨울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것은 여전히 의아하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고 햇볕의 질감이 한결 부드러워지는 춘분까지는 아니더라도, 겨울의 그림자 속에서 봄이 막 첫발을 내딛을 즈음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개구리가 뛴다는 우수 경칩 언저리에 자리 잡고 있어야 마땅할 것만 같은데.
가는 해와 오는 해 사이에 눈에 보이는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날짜를 헤아리고 금을 그어 버리는 이유는 어떤 시간들을 떠나보내고 싶고 지워버리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나를 통과해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 다가오는 시간에 대해서도 대단한 계획을 세우거나 기대를 걸지 않으려 한다. 짙은 어둠은 더 환한 빛이 나타나기 위한 선행 과정이라는 이야기에 수긍하지만, 한편, 이 세상 무엇을 딱히 어둠이나 빛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지 좀 의심스럽기도 하다.
며칠 뒤 섣달그믐에는 잠들지 않고 밤을 지새울 작정이다. 그리고 새해 아침 창문을 활짝 열고 내다보았을 때 온 세상에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기를 바란다. 내가 고요히 덮어버린 것들을 너희들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라는 듯, 펑펑.
글=부희령(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부희령] 펑펑
입력 2016-12-29 1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