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주 예수의 강림이’ 179장 (통 167)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이사야 63장 15∼19절
말씀 : 본문은 기도입니다. 이사야는 하늘(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 계신 하나님을 향해 “살피소서… 보소서”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마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주기도문의 첫마디처럼 들립니다.
이스라엘은 멸망했습니다. 포로생활이 끝났어도 성전과 성은 아직 폐허인 채로 있습니다. 몸도 춥고 마음도 여전히 시립니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사야는 그 자리에 하나님의 얼굴 곧 하나님의 임재를 절실하게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등을 돌리신 것처럼 보이는 현실이 가장 두려웠습니다.
그는 ‘주의 열성’이 이제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는 모세를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꿈조차 꾸지 못할 때에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추진하신 일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님의 열심을 기억하는 그는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에 있냐고 물었습니다. 이는 홍해바다와 광야 40년동안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보살피신 일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는 더 나아가 하나님의 간곡한 자비와 사랑이 그쳤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간곡한 자비란 말은 ‘수많은 창자들’이란 뜻입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감정을 가장 적나라하고 깊이 간직한 곳이 창자라고 여기는 히브리인의 생각이 들어 있습니다(‘나의 창자야 나의 창자야’ 렘 4:19 직역). 이것은 사랑(어머니의 아기집)이란 말과 함께 자신의 백성을 향해 뜨겁게, 그리고 저절로 솟구치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지금은 그 애정을 스스로 억누르고 계셨습니다.
이에 그는 하나님을 향해 매우 감성적인 호소를 했습니다.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16절)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돌아오시기를 간구했습니다(17절). 이는 자식이 잘못을 범했을 때 짐짓 미워하는 척하더라도 부성과 모성은 본디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착안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태도만 놓고 보면 하나님께 애정을 구할 염치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하나님의 본마음에 호소한 것입니다. 이 기도를 요즘 말로 풀자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원칙대로 다루셔도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취급당해도 마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고 하나님 없이 우리 혼자 가도록 내버려 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만 믿고 우리 마음은 강퍅해졌습니다. 하나님, 이런 저희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우리는 종종 ‘나는 하나님께 죄를 범할 수 있으며, 그런 다음 내가 원할 때마다 회개하고 돌아와서 내가 원할 때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돌아오셔야만(찾아오셔야만) 우리는 그분의 밝고 환한 자비를 체험하게 됩니다. 사랑과 구원의 주도권은 하나님 편에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 :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저희는 용서받을 수 없는 일들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시 130:4)을 고백하며 나아옵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얼굴을 보여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정현진 목사(서울 수도교회)
[가정예배 365-12월 30일]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입력 2016-12-29 2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