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00% 슈어해야… 장관 지시에 반항 못해”

입력 2016-12-29 04:09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결정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기금운용본부 자체 투자위원회에서 과반수 찬성이 나왔다”며 절차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당시 투자위원회가 미리 찬성 결론을 정해두고 짜놓은 시나리오에 따라 찬성 입장을 결정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전날 넥타이 차림으로 특검에 출두한 문 이사장은 28일 새벽 긴급체포됐고, 5시간 만에 수의 차림으로 특검에 소환돼 조사받았다.

플랜B까지 있었다

특검팀은 신승엽 투자리스크팀장 등 운용본부 관계자들로부터 지난해 7월 10일 투자위원회 개최 직전 ‘무조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을 의결한다’는 결론을 정해둔 정황을 포착했다. 일부 참석자는 “(삼성물산 합병이) 100% 성사돼야 한다” “100% 슈어(sure·확실)해야 한다”는 취지로 윗선의 압박까지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투자위원은 “장관님(문 이사장) 지시에 반항할 수 없었다”고 소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운용본부가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찬성을 결정하도록 유도하면서 한편으로는 의결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2안, 3안 식의 플랜B까지 마련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특검은 운용본부가 일단 내부 투자위원회선에서 한 번에 찬성을 이끌어낸다는 계획을 세우고 투자위원끼리 찬성 의결을 설득한 단서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 투자위원끼리의 최초 의결에서 찬성표가 과반에 미치지 못하면 외부 전문위원회로 결정권이 넘어가고, 이때에는 삼성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이 커지는 점을 우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특검은 지난 21일 압수수색, 투자위원회 회의 내용 조사, 관련자 소환 등을 통해 이 과정에 문 이사장의 압박이 있었음을 다각도로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국민연금 관계자 등으로부터 “장관님이 합병이 반드시 성사돼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상당량 확보했다. 문 이사장은 대면과 전화 등 다양한 형식과 경로로 국민연금에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찬성표를 던진 신 팀장의 경우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압수수색 전 사용하던 휴대폰을 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서 “고장나서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말해 의구심을 자아냈다.

부당거래, 靑 개입?

이렇듯 허울뿐인 투자위원회에서는 각본대로 찬성 의결이 한 번에 이뤄졌다.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과 신 팀장 등 12명이 참석한 가운데 8표의 찬성표가 나온 것이다. 외부위원을 포함한 전문위원회는 절차적으로 정당하게 열리지 않게 됐다.

특검팀은 국민연금이 지난해 7월의 투자위원회 이전부터 조직적으로 움직였다고 본다. 홍 전 본부장은 지난해 6월 초까지만 하더라도 “삼성물산 합병 결정은 전문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한다”고 밝혔었다. 특검이 주목하는 날짜는 투자위원회가 열리기 사흘 전인 지난해 7월 7일이다. 이날 홍 전 본부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밀리에 만났다. 국민연금은 공식적 업무의 일환이라 해명했지만 의혹은 가라앉지 않는다. 합병 비율(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이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한 측면이 있었다는 점은 국민연금도 애초 알고 있었다.

특검팀은 이 같은 시나리오에 ‘윗선의 윗선’의 개입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삼성 합병안 통과 1주일 후 이 부회장은 박 대통령과 독대했고, 재단 출연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 다음달부터 삼성은 최순실(60·구속 기소)씨 딸 정유라(20)씨의 독일 승마 활동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청와대는 당시 상황에 대해 “복지부로부터 동향보고를 두어 차례 받았다. 찬성 쪽이 많은 것으로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황인호 이경원 정현수 기자 inhovator@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