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위안부 합의를 맺은 지 꼭 1년이 되는 28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 6m 높이 흰색 소녀상 풍선이 서 있었다. 풍선 옆에 마련된 헌화대에는 파랑 노랑 보라색 초들이 불을 밝혀 올해 숨진 위안부 피해 할머니 7명의 영정을 비췄다. 영정 앞에 선 시민들은 빨간 장미와 노란 카네이션을 내려놓으며 위안부 피해자들을 추모했다.
영하 8도까지 내려간 이날 평화의소녀상은 노란 털모자를 썼다. 목도리가 어깨부터 무릎까지 켜켜이 덮였다. 발을 동동 구를 만큼 추운 날씨였지만 1263차 수요집회를 찾은 시민 2000여명(경찰추산 700명)이 끝까지 소녀상 옆을 지켰다.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90) 길원옥(88) 할머니도 간이의자에 앉아 올해 마지막 수요집회를 지켜봤다.
올해 세상을 떠난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추모형식으로 집회가 진행됐다. 최옥이 김경순 공점엽 이수단 유희남 박숙이 김모 할머니 등 7명이 세상을 떠났다. 집회 현장에 온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4년 전 수요집회를 시작한 지 오늘이 9122일째 되는 날”이라며 “위안부 할머니들이 한을 품고 저세상으로 가고 39분만 남았다”며 위안부 합의를 비판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 체결 1년이 지났지만 상처는 더 벌어졌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위안부 피해자, 유족들은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와 법적 배상이 없는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다시 천명했다. 정대협은 “지난해 12월 28일 맺은 합의는 피해 당사자와 시민사회를 외면한 외교적 참사”라며 “피해자와 국민이 반대하는데 정부는 화해치유재단을 만들어 성격이 불분명한 치유금 지급을 강행했다”고 규탄했다.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는 “우리는 일본 정부의 사죄와 법적 배상 전에는 합의를 할 수 없다”며 “정부는 일본 정부의 사죄도 배상도 아닌 위로금을 받고 한·일 위안부 합의를 맺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격”이라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은 이날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이상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한·일 위안부 합의는 정작 협상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피해자와 법적 책임, 배상청구권의 문제가 빠진 채 일방적으로 타결됐다”며 “일본에 직접 법적 책임을 묻고 배상청구권을 실현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권은 한·일 위안부 합의를 정권교체 뒤 무효화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대학생 소녀상지킴이’도 일본군 위안부 사죄배상과 위안부 합의 폐기를 촉구했다. 이들은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이 다른 곳으로 이전된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소녀상 이전을 반대한다”며 지난해 12월 30일부터 매일 소녀상 앞 농성을 이어왔다.
부산에서는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반발한 시민단체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가 오후 12시30분쯤 동구 일본영사관 후문 앞에 소녀상을 설치하려다가 4시간 만에 구청과 경찰에 강제 해산됐다.
시민단체 회원 30여명은 지게차로 약 1t 무게의 소녀상을 옮긴 뒤 곧바로 설치하려 했지만 경찰에 막혔다. 회원들은 소녀상을 둘러싸고 연좌농성을 이어갔지만 구청은 도로법 위반이라며 이들을 끌어냈다. 13명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연행됐다.
글=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위안부 합의는 참사”… 상처만 더 키웠다
입력 2016-12-28 18:19 수정 2016-12-28 2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