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가계 여윳돈 87% 줄어 ‘빈 지갑’… 나라 곳간 잉여금 3년만에 최대

입력 2016-12-29 04:01

오랜 경기침체 속에 가계부채가 급증하면서 지난 9월 말 가계의 여유자금이 2분기보다 12조원이나 줄었다. 반면 정부는 세수 증가 덕분에 2013년 이후 사상 최대의 자금잉여 규모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세금을 덜 걷든지, 아니면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가계소득을 늘려주는 적극적 재정 집행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은행은 28일 3분기 자금순환 잠정치 통계를 발표했다. 경제주체별로 자금흐름을 볼 수 있는 통계다. 9월 말 현재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자금잉여는 1조9000억원으로 6월 말 14조1000억원에 비해 87%(12조2000억원)나 감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다.

자금잉여는 운용하는 돈(자금운용)에서 빌려온 돈(자금조달)을 뺀 것으로 여유자금을 가리킨다. 경기하강 속도는 빠르고, 가계 소득은 정체된 상황에서 부동산 관련 대출이 급증하면서 여유자금이 급격하게 말라붙은 것이다. 한은은 주요 원인으로 “신규 주택 구입을 위한 대출이 늘어났다”고 꼽았다.

보통 가계는 경제활동을 통해 여유자금을 만든 뒤 금융기관을 거쳐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기업에 대출해 준다. 기업은 이를 가지고 투자를 해 고용을 늘리며 가계 소득 증대에 이바지한다. 흔히 말하는 경제의 선순환 효과다. 현재는 극심한 불황으로 이런 선순환 고리가 파괴됐다.

3분기 금융회사를 제외한 국내 기업(비금융 법인기업)은 4조5000억원의 여유자금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2분기 5조8000억원의 자금 부족에서 플러스로 반전된 것이다.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고 여윳돈을 쌓아둔 결과다. 비금융 법인기업이 자금잉여로 전환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와 공기업의 곳간 역시 여윳돈으로 가득 찼다. 세수 증대로 정부의 자금잉여 규모는 3분기 18조7000억원을 기록해 2분기 10조6000억원보다 8조1000억원 늘어났다. 공기업도 자금잉여 규모가 3분기 6조4000억원 플러스로 전환했다. 올여름 폭염으로 한국전력의 수익이 대폭 개선된 덕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침체에 따른 소득 감소가 민간 여유자금을 줄이고 있는데, 정부는 과거 그대로 세금을 거둬가니 상대적 여유를 보이며 비대칭을 보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다 13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가 가계의 소비여력을 줄이고 있다는 경고음이 높은데, 은행 대출금리는 더 오르고 있다. 한은이 집계한 11월 중 금융기관 가중평균 금리 통계를 보면 예금은행 신규취급액 기준 대출금리는 연 3.36%로 전월 대비 0.07% 포인트 상승했다. 넉 달 연속 오름세다.

정부와 공공부문의 곳간은 넘쳐나고 가계는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국면을 타개하려면 보다 적극적인 재정지출 정책이 필요하다.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은 “법인세와 소득세 가운데 늘어난 부분을 미시적으로 살펴서 저소득층 생계형 자영업자 등에게 공제 혜택을 부여하는 식의 소득 확대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