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28일 퀄컴에 대해 사상 최대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과징금 액수보다 퀄컴의 불공정거래 관행을 막을 시정명령이 내려진 게 제재의 핵심이다. 퀄컴은 겉으로는 휴대전화에 통신기술을 담은 칩셋을 제조·판매하는 업체로 보이지만 사실상 부당한 특허 사용료로 수익을 버는 ‘특허괴물’이었다. 공정위 시정명령으로 이런 퀄컴의 수익 구조는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이동통신사업은 크게 3개의 시장으로 구성돼 있다. 퀄컴, 삼성 등 휴대전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특허권에 대한 사용료를 받는 특허 라이선스 시장, 인텔 등 모뎀칩셋을 만드는 부품 시장, 그리고 이 두 시장을 바탕으로 휴대전화를 직접 제조하는 시장이 있다. 퀄컴은 수십년간 특허 라이선스 시장과 부품 시장에서 불공정한 방식으로 독점적 지위를 확보했다. 우선 퀄컴은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등 자신들이 갖고 있는 표준필수특허(SEP)를 경쟁 모뎀칩셋 회사에 제공하는 것을 거부했다. SEP로 지정되면 다른 기업들은 이 기술을 이용해 제품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SEP 보유회사는 다른 경쟁사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퀄컴은 이를 거부했고, 경쟁 칩셋사는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 2008년 전 세계 주요 11개 모뎀칩셋 제조사 중 9개사는 시장에서 사라졌다.
퀄컴은 제조 자회사를 통해 생산한 모뎀칩셋을 삼성, 애플 등 휴대전화 제조사와 직접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면서 휴대전화 가격을 바탕으로 특허사용료를 받았다. 칩셋 제조사에 특허사용료를 넘기면 약 30달러의 칩셋 가격의 10%를 받아도 3달러에 불과하지만, 600달러의 휴대전화 가격의 5%(30달러)를 받으면서 부당한 수익을 올리는 구조였다. 퀄컴의 칩셋이 없으면 휴대전화를 만들 수 없는 제조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불공정한 계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퀄컴은 한편으로는 휴대전화 제조사들이 보유한 특허권을 싼 값으로 줄 것을 요구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휴대전화 하나를 만드는 데 수만개의 특허가 필요한데 퀄컴은 자기는 다 받으면서 남은 안 주겠다는 이중 잣대를 들이댔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과징금도 엄격하게 부과했지만 시정명령을 통해 퀄컴의 불공정한 사업구조에 철퇴를 가했다. 시정명령은 곧바로 적용된다. 퀄컴이 법원에 효력 중지 가처분신청을 내겠지만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삼성, 애플 등과 맺었던 불공정한 계약서를 다시 써야 한다. 지난해 중국이 과징금 1조원에 비해 미약한 시정명령을 내렸을 때 퀄컴 내부에서는 안도의 한숨을 쉬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번 공정위 시정명령으로 퀄컴은 삼성 등 국내 업체뿐 아니라 애플, 인텔 등 국내에 휴대전화를 판매하는 200여 다국적 기업과의 거래에서 기존처럼 땅 짚고 헤엄치기 식 영업을 할 수 없게 됐다. 공정위의 또 다른 관계자는 “퀄컴은 하도급으로 칩셋을 만들어 제조공장조차 없다”면서 “사실상 특허괴물 노릇으로 수익을 냈는데 이번에 목줄이 잡힌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퀄컴 1조원 과징금] 불공정 거래로 배불리는 ‘특허 괴물’에 세계 첫 철퇴
입력 2016-12-28 18:18 수정 2016-12-28 2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