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연금 기금운용 독립성·투명성 갖춰라

입력 2016-12-28 17:25 수정 2016-12-28 21:17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특별검사팀에 긴급체포됐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찬성토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가 적용됐다. 당시 국민연금은 외부 전문가를 배제한 채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찬성키로 결정했는데, 그렇게 하라는 복지부 압력이 있었고 그것을 지시한 사람이 문 전 장관이란 것이다. 이로써 특검이 판단한 사건의 얼개가 정권과 재벌의 ‘거래’임이 확인됐다. 두 계열사의 합병은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매우 수월하게 해주는 절차였다. 합병이 성사된 다음 달 삼성은 최순실씨 회사와 220억원대 컨설팅 계약을 맺었다. 국민연금이 삼성에 큰 이득을 안겨줬고 삼성은 최씨 측에 거액을 제공했다. 이를 가능케 한 정부 압력이 있었다면 삼성이 최씨에게 돈을 쓴 것은 권력의 강요에 굴복해서가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특검 수사는 이제 문 전 장관을 움직인 권력, 청와대 김진수 보건복지비서관과 안종범 전 수석을 거쳐 박근혜 대통령을 향할 것이다.

이 거래에 국민연금 기금이 동원됐다는 대목에선 말문이 막힌다. 국민연금이 어떤 돈인가. 저성장과 고령화 시대에 서민들의 마지막 보루인 돈이 정권과 재벌의 사익(私益) 추구에 쓰였다면 수백만 촛불집회보다 훨씬 큰 국민적 공분을 살 일이다. 당시 많은 전문가가 합병 찬성은 국민연금 기금에 손해가 나는 일임을 지적했다. 기금이 손해를 보면 국민의 노후가 피해를 입는다는 걸 모르지 않았을 텐데 이 정부는 강행했다. 그것도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들에게 “너는 찬성하고, 너는 기권하라”는 식으로 찬반 투표 시나리오를 마련해 강요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진상을 낱낱이 밝혀서 관련된 이들이 최대한 무거운 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언제든 부패할 수 있는 정치권력, 자본권력으로부터 국민의 노후자금을 지키는 길이다.

국민연금은 500조원대 기금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규모지만 운용은 이런 입김에 완벽히 휘둘릴 만큼 구시대적이었다. 900조원대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최고윤리경영자(Chief Ethics Officer)를 두고 무기 업체, 반환경 기업 등에 투자하지 않는 공익성을 고수한다. 그 정도는 못 하더라도 독립성과 투명성은 진즉 갖췄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국민연금 기금은 철저히 국민을 위해 운용되도록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기동민 민주당 대변인은 “삼성은 국민 앞에 사죄하고 스스로 죄를 청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적지 않은 국민들이 삼성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임에도 최근 드러나는 행태는 권위주의 시절과 다를 게 없어서다. 이래서 국내외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삼성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