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 1조원 과징금] 휴대전화 제조사 ‘환영’ 속 美 ‘보복’ 없을까?

입력 2016-12-29 04:01

칩셋 공급에 있어서 사실상 종속 관계에 놓여 있던 삼성, LG 등 휴대전화 제조사들은 28일 공정거래위원회의 퀄컴 제재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공급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 칩셋 가격이 떨어지고 제품도 더 다양해질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휴대전화 제조사들이 다양한 업체로부터 칩셋을 수급받으면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유리해질 것”이라며 “전반적으로 반도체, 통신 시스템 내에서 칩셋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들에 자율성이 생겼다”고 평가했다.

휴대전화 제조사들은 원가 절감에 따라 수익성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퀄컴이 특허료를 인하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 시정 조치가 반영되면 퀄컴이 특허료를 내릴 확률이 높다”며 “원가 절감과 칩셋 공급 다변화에 가장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퀄컴은 공정위 제재가 부당하다고 즉각 반박했다. 퀄컴이 업체들의 경쟁을 제한했다는 것은 어떠한 증거도 없다는 논리다. 퀄컴은 입장자료에서 “공정위 결정은 의결서가 나오기 전까지는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며 “향후 공정위 의결서를 수령하는 대로 시정명령에 대한 집행정지를 신청하고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IT기업 퀄컴에 대한 공정위의 강도 높은 제재 결정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비판적인 입장을 수차례 밝히는 등 극단적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했다. 퀄컴 측도 공정위 제재는 한·미 FTA가 보장하고 있는 ‘미국 기업들의 권리’에 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퀄컴에 대한 제재 결정이 원칙대로 이뤄진 만큼 문제의 소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공정위는 이번 조사 결과가 한·미 FTA 규정을 위배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쓰면서 심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의 보복 조치 등 통상 갈등을 예단하는 것은 기우라는 분석도 있다. 퀄컴의 반대편에 섰던 기업 중 상당수가 미국 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트럼프 행정부가 퀄컴 편을 들어줄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시각이다. 이번 퀄컴 제재에는 삼성전자와 LG 외에 애플과 인텔 등 미국 기업들도 힘을 합해 연합전선을 펼쳤다. 공정위 관계자는 “퀄컴 건에 대해선 우리뿐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조사하고 제재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대미 통상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유성열 기자, 심희정 기자,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