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통한 ‘김은숙 드라마’

입력 2016-12-30 00:00
tvN이 개국 10주년을 기념해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 ‘도깨비’에서 남녀 주인공을 맡은 배우 공유(오른쪽)와 김고은. CJ E&M 제공
이 작품 출연 배우들 모습이 담긴 포스터.
김은숙은 신데렐라 스토리를 맛깔나게 변주하는 데 능수능란한 드라마 작가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평범한 여성이 멋지고 능력 출중한 남성을 만나 사랑을 완성해가는 얼개를 띠고 있다. ‘파리의 연인’(2004) ‘시크릿 가든’(2011) ‘상속자들’(2013) 등이 대표적이다. 자기복제가 심하고 서사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그의 작품은 감각적인 대사를 앞세워 흥행 불패의 역사를 써내려왔다.

tvN에서 매주 금·토요일 오후 8시에 방영되는 ‘도깨비’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재벌 2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900년 넘게 살고 있는 전지전능한 도깨비를 남자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16부작으로 기획돼 지난 24일 8회를 내보내며 반환점을 돈 드라마는 요즘 안방극장 최고 화제작으로 꼽힌다.

CJ E&M이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코리아와 공동으로 집계해 지난 26일 내놓은 콘텐츠영향력지수(CPI)에 따르면 도깨비는 CPI 지수 314.5를 기록하며 정상에 올랐다. 2위와 3위는 각각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MBC)과 수목극 ‘푸른 바다의 전설’(SBS)이 차지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8회의 경우 시청률이 12.7%를 기록하며 지상파 포함 동시간대 시청률 1위에 랭크됐다.

줄거리는 황당무계하다. 도깨비 김신(공유)이 불멸의 저주를 끝내려면 이른바 ‘도깨비 신부’가 그의 가슴팍에 꽂힌 검을 뽑아줘야 한다. 문제는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도깨비 신부 지은탁(김고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됐다는 것.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아이러니가 결단의 발목을 잡는다.

전문가들은 도깨비가 김은숙의 전작들과 유사하면서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작품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드라마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는 “김은숙 작품은 감각적이지만 깊이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도깨비에서는 인간과 삶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이고 있다”고 격찬했다. 이어 “삶과 죽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운명의 아이러니를 잘 풀어낸 드라마”라며 “도깨비는 김은숙의 작품 인생에서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작품이 호평 받는 데는 배우들의 호연(好演)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공유는 내면의 아픔을 간직한 김신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며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김은숙은 공유를 캐스팅하기 위해 5년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는 지난달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공유한테 5년 동안 작품을 거절당한 터라 출연 제의를 할 때 조심스러웠다”면서 “하지만 (공유가) ‘소심하고 겁 많은 도깨비라도 괜찮다면 하겠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와 가슴이 먹먹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도깨비를 호평하는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극과 현대극을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설정이 진부하다거나 일부 배우의 연기가 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주진 드라마평론가는 “불멸의 도깨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도 (외계인이 주인공이었던) ‘별에서 온 그대’와 크게 다를 게 없다”며 “신선하다거나 다음 회가 궁금해지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리긴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