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실이라면 중대범죄다

입력 2016-12-28 17:25
이 정권에서 진보이거나 정권에 비판적인 성향의 문화예술인들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얘기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정권에 밉보인 기관장이 강제로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창작지원금 공모에서 1등을 했지만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아닌 다른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탈락했다는 소문은 정설로 굳어져 버렸다. 이처럼 박근혜정권이 손봐줘야 할 문화예술계 인사 명단이 정부에 있다고 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의해 베일이 벗겨질 모양이다. 수사 속도나 관련자들에 대한 압수수색 등으로 볼 때 이미 실체에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통해서도 알려졌다. 그는 퇴임 직전인 2014년 6월 블랙리스트를 직접 봤다고 말했다.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는 같은 해 10월 2일 회의에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문화예술계의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이 나온다.

이를 토대로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주도하고 문체부가 적극 가담해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특검이 보고 있다는 것이다.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문화예술인이 1만명에 육박한다는 관측도 있다. 조윤선 문체부 장관 등이 부인하고 있지만 유 전 장관은 정무수석실 지시를 받아 문체부에 블랙리스트를 전달한 인물까지 공개했다.

현 정권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자신들과 코드가 맞지 않는 문화예술인들에게 재갈을 물리려 한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는 그 어떤 범죄와도 비교할 수 없는 중대 범죄에 해당된다. 돈과 자리로 문화예술인들의 영혼을 파괴하고 길들이려는 파렴치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회가 박 대통령을 탄핵 소추한 사유에도 포함돼 있는,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 및 사상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기도 하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필화사건을 조작해 문인들을 감옥에 보내고 금지곡을 발표해 노래를 못 부르게 한 것과 뭐가 다른가.

블랙리스트가 확인된다면 대한민국의 또 다른 수치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특검은 블랙리스트의 실체는 물론이고 작성 주체와 목적 등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관련자들을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